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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함 위에 얹어낸 현재의 이야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D: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4.07.24 10:56 수정 2024.07.24 10:56

21세기 후반 인간의 삶을 돕다 은퇴한(사실은 버려진) ‘헬퍼봇’들이 모여 사는 서울의 한 낡은 아파트. 구형 헬퍼봇 올리버는 자신의 주인 제임스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이곳에 머물고 있다. 배달된 잡지와 LP를 듣고, 화분에 물을 주는 단순한 삶을 이어가면서 말이다. 그런 올리버의 삶은 맞은편 집에 사는 헬퍼봇 클레어의 등장과 함께 변화를 맞는다.


ⓒCJ ENM

예스24스테이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이렇게 시작된다. 올리버는 제임스가 사는 제주도에 가기 위해 공병을 줍고, 클레어도 제주도 숲에만 남아 있다는 반딧불이를 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함께 제주도로 향하면서 두 로봇 사이엔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이대로 작동이 멈춰도 괜찮다’고 생각하던 두 로봇이 방을 벗어나 관계를 맺고, 사랑을 꽃피우는 모습은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무엇을 잊고 살았고,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비롯해 설렘과 배려, 믿음, 공존 등 현대 사회와는 동떨어진 감정의 키워드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인기 비결이다.


사실 작품의 스토리는 그리 새롭진 않다. 인간의 감정을 배우는 로봇, 그리고 그보다 더 복잡한 감정의 세계로 나아가는 로봇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등장해왔다.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CJ ENM

그럼에도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국내 초연 때부터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로 호평을 받아왔다. 당시 97회 중 70회 매진을 기록하며 창작 뮤지컬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이후 한국뮤지컬어워즈 6관왕, 예그린뮤지컬어워드 4관왕을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오는 10월에는 한국 창작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진출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벌써 다섯 번째 시즌임에도 여전히 관객들로 공연장이 붐비고, 해외 진출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의 근원에 깔려 있는 정서는 클래식”이라던 박천휴 작가의 말처럼, 작품의 전반에 어느 시대와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고전적 요소들이 곳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클레어를 만나기 전 대인기피증을 앓는 것처럼 보이는 올리버가 종이컵으로 만든 실 전화기로 멀찌감치 떨어져 클레어와 소통하는 모습은 아날로그 정서를 풍기는 동시에 개인주의화되어가는 현실을 담고 있다. 점점 녹이 슬어가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두 헬퍼봇의 모습에서도 우리네 부모가 떠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흔한 이야기일지라도 짜임새 있게 이야기가 펼쳐지고, 상황에 걸맞은 아름다운 넘버가 적재적소에서 터지면서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셈이다. 헬퍼봇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호연도 눈여겨볼만하다. 이번 시즌에는 올리버 역에 정욱진·윤은오·신재범, 클레어 역에 홍지희·박진주·장민제, 제임스 역에 이시안·최호중이 함께 한다. 9월8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1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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