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급발진 의심 사고'… 페달 블랙박스 보다 더 중요한 것 [기자수첩-산업IT]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4.07.23 07:00 수정 2024.07.23 09:06

늘어나는 급발진 의심사고

페달 블랙박스·제조사 책임 전환… 사후대책 '급급'

중요한 건 '사고 안 나도록' 방지대책 세워야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키우던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 문 앞에 홈캠을 설치하고 고양이를 데려온 펫샵에 전화해서 고양이가 왜 나갔는지, 원래 이상한 고양이를 판 펫샵의 책임인 것은 아닌지 추궁한다. 이미 고양이는 집에 없는데도 말이다.


최근 늘고있는 급발진 의심 사고를 바라보는 정부의 정책은 고양이가 집을 나가고 나서야 부랴부랴 홈캠을 설치하는 이 상황과 많이 닮아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페달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 입증 책임을 제조사에 두도록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는 모습이 꼭 그렇다.


취지는 좋다. 다음 번에 또 같은 사고가 났을 때 조금 더 명확하게 원인을 밝히고, 마땅한 조치를 취하기 위함이다. 집 나간 고양이의 주인은 다음 고양이를 키울 때는 조금 더 안심하고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비롯해 손자를 태운 할머니의 사고 등 이런 급발진 의심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누구의 잘못인 지를 가려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미 일어난 사고이며, 누군가는 사망했고, 이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 얼마나 보상받을 것인지는 합당하게 이뤄져야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똑같은 차량에 페달 블랙박스를 달아놓는다고 해서 사고가 안 일어날까? 홈캠을 설치했다고 해서 나갈 고양이가 안 나갈까?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헷갈려서 사고가 난 것인지 아닌지, 고양이가 창문으로 나갔는지 현관으로 나갔는지는 알 수 있더라도 페달블랙박스와 홈캠에 사고를 막는 기능은 없다. 사고가 난 이후 시시비비를 가릴 순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의미다.


페달 브레이크를 의무화시켰을 때의 또 다른 문제점은 비용 상승이다. 페달 브레이크를 기본 사양으로 탑재하기 위해서는 해당 블랙박스의 품질 검증을 위한 시간과 개발비용이 들고, 이로 인한 가격 상승은 소비자의 몫이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페달블랙박스를 의무화한 나라는 없기 때문에, 수입차 업체들도 한국에 차량을 팔 때만 페달 블랙박스를 달아야하고, 추가적인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제조사와 소비자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하는 마당에 급발진 의심 사고를 줄이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대책이다.


해외 각국은 비상자동제동장치(AEBS)를 의무화 하는 등 근본적인 사고 예방에 나서고 있다. 가속페달을 오조작 했을 경우 차량과 충돌하기 전 주행을 억제하는 페달 오조작 방지 기술(PMAPS) 역시 국내에선 아직 도입되지 않았지만, 해외 각국은 도입 후 지속적으로 연구를도 이어나가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리 정부의 정책은 본질과 거리가 멀다. 국민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시청역 사고 피해자 뿐 아니라 '급발진 의심 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과 자기 자신'이다. 박살난 차 안의 블랙박스는 사망한 운전자를 살릴 수 없다.

'기자수첩-산업IT'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