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만 나면 급발진?…가속페달 7번 밟고 '급발진 주장' 사례도

과거 급발진 주장 사고 페달 블랙박스 영상 분석자료 공개

명백한 페달 오조작 사고에도 급발진 주장하는 사례 빈번

시청역 역주행 차량 사고도 '확증편향' 주의해야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2월 유럽연합 유엔경제위원회(NECE, United Nations Economic Commission for Europe) 주관 분과회의에서 발표한 페달 오조작 사고 사례 분석자료. ⓒ한국교통안전공단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6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면서 급발진 논란이 재점화됐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급발진이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고 이후 정상적으로 차가 멈춰서는 영상과 당시 상황에 대한 목격담이 공개되면서 페달 오조작에 의한 사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시민단체 등 일각에서는 급발진 의심 사고시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게 지우는 게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실을 감안하면 무조건 제조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고가 나면 무조건 급발진부터 주장하고 보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본인 과실이 명확한데도 책임 회피를 위해 급발진 사고라며 제조사를 걸고넘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실제 운전자가 급발진 사고를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차량 결함이 아닌 페달 오조작이 사고의 원인이었음을 증명하는 분석자료가 최근 공개됐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2월 유럽연합 유엔경제위원회(NECE, United Nations Economic Commission for Europe) 주관 분과회의에서 발표한 이 자료는 지난해 11월 서울시 시내 주택가를 운행하던 전기택시가 담벼락을 들이받는 사고와 관련된 것으로, 당시 60대 택시 운전사는 차량 급발진을 주장했었다.

사고원인을 조사한 경찰은 페달 블랙박스 포함 총 4개 채널로 구성된 블랙박스 영상을 수거해 분석한 결과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반복해서 밟은 것으로 확인됐다.

페달 블랙박스 등에는 택시 운전자가 골목에서 우회전한 뒤 3초간 30m를 달리는 상황에서 가속 페달을 6번이나 ‘밟았다 뗐다’를 반복한 장면이 담겼다.

이후 일곱 번째 가속 페달을 밟은 후에는 충돌할 때까지 계속 밟은 상태를 유지했으며, 충돌 직전의 차량 속도는 61km/h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담벼락을 충돌하기 전까지 총 119m(약 7.9초)를 달리는 동안 택시 기사는 단 한 번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았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2월 유럽연합 유엔경제위원회(NECE, United Nations Economic Commission for Europe) 주관 분과회의에서 발표한 페달 오조작 사고 사례 분석자료. ⓒ한국교통안전공단

최근 급발진 의심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페달 블랙박스 보급이 확대되고 있지만 급발진을 주장하는 차량에서 페달 블랙박스 영상 분석 결과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번 결과는 페달 오조작을 일으키고 있는 운전자의 특성을 정확히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급발진 주장 현상은 대부분 운전자 본인이 작동시키고 있는 페달이 브레이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 영상에서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여러 번 밟는 모습은 그런 해석을 확인해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차량 결함에 의해 급발진이 종종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 확증편향이 오히려 사고 발생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미디어나 유튜버 등이 내놓는 자극적인 급발진 영상에 자주 노출됨에 따라 순간적으로 본인의 착각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영상은 경찰과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관련 기관에서 확보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페달 오조작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공익적 차원에서 공개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페달 오조작에 따른 의도치 않은 가속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 가장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행동은 밟고 있는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브레이크 페달을 한 번에 힘껏 밟는 연습을 평소에 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전문가는 “대부분 국민들이 급발진 영상을 접하게 되면 감정을 대입하는 경향이 커 과학적, 논리적으로 사건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며 “이번 영상 분석 공개를 통해 긴 시간 동안 운전자가 페달을 오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해외 주요국도 ‘의도치 않은 가속’의 주요 원인이 페달 오조작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엔 경제 위원회는 페달오조작 방지장치(ACPE)에 대한 글로벌 평가 기준과 법규 제정을 위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ACPE를 오래전부터 상용화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ACPE 적용 차량이 확대되면서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와 사상자 수는 최근 10년 간 절반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