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대학가에서 해방촌으로…서점 풀무질이 내린 단단한 ‘뿌리’ [공간을 기억하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4.06.28 14:00 수정 2024.06.28 14:01

책방지기의 이야기⑦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서점에서 해방촌 마을 사랑방으로


풀무질은 1985년 학생 운동의 열기 속에서 서울 성균관대학교 앞에 문을 연 인문사회과학서점이다. 성대 학생들은 물론, 젊은 청년들이 모여 생각을 나누며 토론하는 사랑방이자 아지트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다. 서점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또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많아졌으며, 인문학 또는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도 세분화됐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한때 ‘폐업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지난 2019년 가수 전범선이 은종복 대표에게서 풀무질을 이어받아 운영 중이다.


지난해 2월에는 39년 동안 지키던 성대 앞을 떠나 서울 용산구 해방촌으로 자리도 옮겼다. ‘인문사회과학 서점’이라는 정체성은 물론 유지하지만, 환경과 여성, 동물권으로 주제를 넓혀 ‘지금’ 청년들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지난 2020년 입사해 풀무질에서 일하고 있는 김치현 점장은 청년은 물론, 해방촌의 주민들도 함께할 수 있는 ‘확장된’ 풀무질도 꿈꾸고 있다고 ‘변화’를 설명했다.


“1980~90년대 풀무질이 집중하던 주제들이 지금까지도 정말 유의미하고 필요한 부분들이다. 동시에 지금은 또 다른 주제와 고민할 지점들이 생겼다고 여겼다. 동시에 ‘대학가’의 의미도 변했다. 대학가였기 때문에 채울 수 있었던 부분들도 전보다 약화된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지금은 좀 더 마을, 지역 공동체에 집중을 하려고 한다. ‘대학가’라는 것도 어떤 관문을 넘어야지만 입성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이제 그런 것들을 넘어 마을 해방촌에 자리를 잡은 만큼, 좀 더 확장을 하고 싶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 ‘책’을 뿌리로…해방촌에서 뻗어나갈 가지들


‘공간’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성대 앞 풀무질은 지하에 위치, 그곳에서 책을 선보이는 동시에 행사 및 공연도 함께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었다면 지금은 골목 어귀 1층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붙잡고 있다. 연극 등 각종 공연 및 행사는 그대로 이어지지만, 공간을 분리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노력도 하고 있다.


“성대 앞 풀무질은 아무래도 햇빛을 보지 못해 일하는 분들의 고충도 없진 않았다. 지금은 탁 트인 곳에 위치해 서점 그 자체를 입구로 활용하고자 한다. 또 여기에서 우리가 하는 것들에 관심이 생기시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지하로 내려가 행사들도 함께할 수 있다. 그곳에선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다.”


책 관련 행사인 북토크는 물론, 연극을 비롯해 각종 공연을 선보이기도 한다. 해방촌의 풀무질에서는 ‘읽기 모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도 아우를 계획이다. 책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오프라인 서점’만의 재미이자 장점이라고 여긴다.


“그냥 책만 가지고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많은 서점들이 행사를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영상 매체가 많아지며 책이라는 매체의 진입장벽도 조금 높아진 것 같다. 행사를 매개체로 책에 대한 장벽은 낮추기도 하지만, 우리가 책을 읽는다고 할 때 단순히 읽고, 독후감을 쓰는 정도만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가 책을 매개로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고, 그래서 여러 고민들을 하게 된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지금은 서점에 대학생들이 모여 생각을 나누는 풍경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배우는 것이 없지 않다고 믿었다. “나도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또 행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을 통해 배운다”라고 말한 김 점장은 앞으로도 풀무질의 카운터를 지키며 ‘풀무질’만의 경험을 제공할 생각이다.


“영화관에 키오스크가 등장하면서 영화관의 매력을 잃었다는 후기를 본 적이 있다. 그걸 보며 나의 업무 환경도 떠올리게 되더라. 사실 무인 서점도 충분히 가능하다. 원하는 책을 고르고 사는데 사람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카운터에 사람이 앉아있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게 서점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여긴다.”


해방촌을 넘어, 각 지역까지. ‘풀무질’이라는 뿌리를 바탕으로 더 뻗어나가고 싶다는 목표도 전했다. “대표님이 전국에 풀무질을 다 퍼뜨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김 점장은 우선 협력 단체인 동물해방물결이 이미 강원도 인제에서 마을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하며 “서점의 성격보다는 수련관 또는 캠프장의 느낌으로 운영하자는 이야기도 한다. 단순히 서점의 역할을 넘어 지역의 인구 소멸과 맞닿을 수 있도록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풀무질은 나무라기보다는 뿌리라고 생각한다. 이 뿌리를 기반으로 가지가 뻗어나가고, 또 그 나무들이 모여 뭔가를 이루기도 하고. 또 그 풀들끼리 서로 연결이 돼 서로를 잡고, 지탱해주기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식으로 많이 퍼져 나가기를 꿈꾼다. 큰 기업이 된다는 건 잘 모르겠고,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기억이 되고 싶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