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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아리셀 화재, 리튬 위험성 과소평가한 인재(人災)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입력 2024.06.25 10:58
수정 2024.06.25 11:12

리튬, 반응성 높고 불 붙으면 전파속도 대단히 빨라

일반적인 방법으로 진화도 어려워…예방이 최선

"리튬 배터리 제조·저장시설, 전면 내화설비 갖춰야"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연합뉴스

24일 대규모 사망자를 낸 경기 화성시의 아리셀 공장 화재는 리튬이라는 물질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화재가 일어난 곳은 리튬을 사용한 1차전지를 제조하는 곳이다. 불이 난 공장 3동에는 리튬 배터리 완제품 3만5000여개가 보관돼 있었다. 이 화재는 보관돼있던 배터리 1개에 불이 붙으면서 다른 배터리에 급속도로 옮겨붙었다. 이로 인해 대량의 화염과 연기가 발생하고 배터리들이 연달이 폭발하면서 공장 안에 있던 여러 작업자가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산업안전 전문가는 "리튬은 반응성이 매우 높은 금속으로 사용과 취급에 있어서 위험물에 준하는 주의가 필요하다"며 "리튬배터리가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는만큼 제조와 사용에 있어서 안전관리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리튬, 어떤 물질이기에 화재 급속도로 번졌나


리튬(원소기호 Li)은 상온에서 고체 상태로 존재하는 알칼리 금속으로 가장 밀도가 낮은 금속원소이기도 하다. 무게 대비 전기 전도성이 가장 높아 전지의 양극재로 많이 사용된다. 리튬을 사용한 전지는 에너지밀도가 높아 다른 양극재를 사용한 전지에 비해 같은 무게로도 더 많은 전력을 저장할 수 있고 장기간의 방전에도 안정적인 전압특성을 나타낸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충전이 가능한 휴대전화·노트북컴퓨터·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2차전지는 물론 장기간 안정적 전압 공급이 필요한 시계나 심장박동보조기기(페이스메이커)의 전력 공급용 단추형 건전지로도 널리 사용된다.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는 단추형 건전지. 규격에 'CR'이 표기돼있다면 리튬을 사용한 건전지다. ⓒ배터리뱅크 제공

이런 리튬이 취급에 주의를 요하는 이유는 높은 반응성 때문이다. 리튬은 상온에서 순수한 산소와 접촉했을 때는 반응하지 않지만 공기 중의 수증기에 민감하게 반응해 자연 발화하기 때문에 공기와 접촉하지 않도록 석유에 담가서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4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소재 일차전지 제조 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리튬 1차전지도 고온과 수증기 만나면 연쇄폭발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날 화재가 발생한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생산하는 1차전지는 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에 비해 리튬이 소량 들어간다는 이유로 화재 위험이 낮게 평가됐다. 리튬전지는 일부러 분해해서 물과 접촉시키거나 불에 넣지 않는다면 화재 발생 위험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리튬은 유해화학물질이 아닌 '일반화학물질'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번 화재에서 볼 수 있듯 리튬은 반응성이 큰 금속이어서 매우 높은 온도에 노출되거나, 수증기와 접촉하면 폭발하기 때문에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화재도 시작은 1개의 리튬 배터리에서 시작했으나, 여기서 발생한 불이 다른 배터리로 옮겨붙으면서 연쇄 폭발이 일어났고, 2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최악의 참사로 이어졌다.


소방당국은 전날 화재와 같은 '금속화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리튬과 같은 알칼리 금속 등 가연성 금속이 원인인 '금속 화재'는 백색 섬광이 발생하는 것이 특징으로, 진압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1000도 이상의 고열을 내며 폭발적으로 반응해 매우 위험하다. 일반 차량 화재에 비해 전기차 화재가 끄기 어려운 것도 전기차에는 리튬 2차전지가 대량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전날 화재에서는 배터리에 포함된 리튬이 극소량인 것으로 확인돼 물을 활용한 일반적인 진압 방식을 사용했지만, 물로 진화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리튬 화재의 경우 보통의 화재처럼 소방차에서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마른 모래를 사용해야 한다. 금속 화재에서 사용되는 팽창질소도 리튬화재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특유의 반응성으로 인해 질소와 격렬히 반응하며 질화리튬을 만들기 때문이다. 또 화염의 전파속도가 대단히 빨라 소방인력의 진입도 어렵게 한다.


24일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1차전지는 안전? 별도 대응 매뉴얼 없어


현재 환경부의 '화학사고 위기대응 매뉴얼' 등은 유해화학물질이 대기나 수계로 유출돼 인명·환경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튬을 비롯한 일반화학물질과 관련한 사고는 소방당국을 중심으로 대응이 이뤄진다.


더욱이 1차전지는 2차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재의 위험성이 작다고 여겨지고, 불산가스와 같은 독성물질을 내뿜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안전기준 등이 마련된 것도 없다. 사실상 안전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최근 리튬 배터리의 활용이 많아지면서 리튬에 대한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10월 15일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유발한 SK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의 경우 2차전지인 리튬이온배터리에서 발화가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약 3300㎡에 달하는 넓은 장소에서 리튬이온배터리의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이 나타나면서 초기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내부 분리막이 파손되면 가스 생성 및 열 폭주 현상이 발생하고, 인접 셀이 연쇄 반응을 하게 된다.


◇리튬 위험성 알고 보다 안전하게 관리했어야…안전불감증이 불러온 '人災'


이번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도 제조된 배터리들을 소량으로 분리적재했다면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튬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한 결과로 벌어진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한국산업용재협회 관계자는 이날 "이번 화재는 1개의 배터리에서 시작된 화재가 주변 배터리로 순식간에 옮겨 붙으면서 커지게 됐다"며 "제조된 배터리는 최종 검수를 마칠 때까지 소량씩 내화(耐火)용기에 담아 거리를 두고 보관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했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리튬전지는 이미 전력공급원으로서 우리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면서 "리튬배터리 사용을 중단할 수 없다면 생산 시설과 사용처에서의 안전기준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배터리 생산·저장 시설에서는 유해물질취급시설에 준하는 전면적인 내화설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하고 정부는 배터리 안전인증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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