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무소불위', 기업 '속수무책'…더 극단화된 노란봉투법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4.06.20 12:25
수정 2024.06.20 12:25
22대 국회서 발의된 노란봉투법, 21대 법안보다 업그레이드
근로자·사용자·노동쟁의 개념 무분별하게 확대
기업 떠나고 국가경쟁력 치명타 우려…대통령 거부권 행사 불가피
22대 총선에서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준 노동계를 향해 진보 정치권이 ‘고객 서비스’에 나섰다. 노동계의 숙원이었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을 6개 야당 공동으로 다시 발의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 정당들은 21대 국회에서, 친 노동 성향의 문재인 정부 때는 가만히 있다가 하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노란봉투법을 발의했으나,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고객만족’을 이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성원’과 ‘압박’을 동시에 보내준 노동계를 위해 22대 국회에서 애프터서비스(AS)에 나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들의 ‘기브 앤 테이크’에 등 터지게 생긴 것은 기업들이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노란봉투법만으로도 공포에 떨다 거부권으로 겨우 한숨 돌렸는데 이번엔 더 심해졌다. 이전보다 더 많은 의석을 챙긴 기념으로 노란봉투법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놔야 한다는 의무감이 발동했는지, 노조에게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고 사측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노란봉투법은 기본적으로,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 범위를 확대하고,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사측의 피해에 법적 대응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6개 야당이 발의한 법안은 이런 방향성이 더 극단화됐다.
이전 노란봉투법은 불법 쟁의로 회사가 피해를 입었을 때 노조원 개인의 불법행위나 책임을 회사가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었다. 다수의 인원이 폭력, 파괴 행위를 벌이는 혼란의 와중에 개개인의 신상을 특정하도록 하는 게 쉽지 않으니, 사실상의 면죄부라는 평가가 있었다.
새 노란봉투법은 아예 노조 불법 쟁의에 대응할 수 없도록 싹을 잘랐다. 노조법 3조 개정안에는 ‘사용자는 노동조합의 의사 결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노동조합 이외에 근로자 개인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 추가된 것이다.
근로자‧사용자 개념도 사실상 무한대로 확장했다. 우선 하청업체, 협력사 직원이 원청업체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할 수 있도록 했던 이전 노란봉투법의 독소조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여기에 새로 발의된 노조법 2조 개정안에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할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다’는 기존 조항이 삭제된 대신 ‘노조를 조직하거나 노조에 가입한 자는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이는 온 나라를 노사 분쟁의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는 장치다. 개인사업자 신분인 특수고용노동자들도 노조를 만들어 이전에는 ‘계약 관계’였던 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쟁의를 벌이는 게 가능해진다. 해고자도 노조에 들어가 활동할 수 있고, 심지어 노조가 사측을 괴롭히는 데 특화된 ‘전문 시위꾼’을 영입할 수도 있다.
노란봉투법은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고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 근로자 등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노란봉투법은 ‘호신용구’ 수준이 아닌 ‘대량살상무기’에 가깝다. 누구에게든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어주면 악용하고 폭주하게 마련이다.
사용자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6개 야당의 노란봉투법 발의에 “노사관계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시장 질서를 교란시켜 결국 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에 커다란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기존 노조에 더해 하청기업 노조, 나아가 개인사업자들까지 줄줄이 교섭을 요구하고 불법 쟁의의 칼을 마음껏 휘두르는데 대응할 방법이 없다면 기업이 버텨낼 도리가 없다. 제도적 문제로 경쟁력을 상실할 상황에 처한 기업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문제가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뿐이다. 기업을 잃은 국가의 경쟁력 상실은 필연이다.
진보 정치권은 노동계를 향한 ‘고객 서비스’에 집착하느라 그에 따른 파장은 전혀 고려해 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고객의 성원의 힘입어 얻은 막대한 의석수를 바탕으로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를 밀어붙이는 건 시간문제다. 결국 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 상실을 막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은 대통령의 거부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