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밥 주려고 들어갔을 뿐인데 주거침입 인정…주거의 평온이란? [디케의 눈물 218]
입력 2024.04.30 05:26
수정 2024.04.30 05:26
피고인, 지난해 길고양이 사료 주고자 타인 집 마당 침입…주거침입 유죄 선고
법조계 "거주지 둘러싼 마당도 '위요지' 포함…의사에 반해 들어가면 주거침입"
"평소에도 피고인, 집주인과 길고양이 문제로 다툼…범죄 목적 아니어도 주거침입 인정"
"안 들어가고 사료만 뿌렸어도 유죄 나왔을 것…'주거의 평온' 깨졌다고 봐야"
길고양이 밥을 주기 위해 남의 집 마당에 들어간 40대에 대해 법원이 주거침입 혐의를 유죄로 보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법조계에선 주거침입죄에서 인정하는 '주거'에는 거주지를 둘러싼 마당도 포함되기에 목적과 상관 없이 거주자의 의사에 반해 들어갔다면 '주거의 평온'을 해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평소에도 피고인이 집주인과 길고양이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범죄 목적이 아니거나 공익적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 주거침입이 인정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13단독 김보라 판사는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박모(44)씨에게 최근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해 6월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타인 집 마당에 들어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씨는 "휴대전화 손전등을 이용해 불을 비춰가며 마당에 있는 고양이를 찾았을 뿐"이라며 주거침입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 집 대문은 창살로 돼 있어 밖에서 소리를 내면 안쪽에서도 들을 수 있는 구조"라며 "고양이를 찾을 의도였다면 굳이 대문을 열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박씨가 마당까지 들어와 고양이 밥을 주는 문제로 평소에도 피해자와 분쟁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실상 주거의 평온 상태가 깨졌다"고 설명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무법인 율샘)는 "주거침입에서 인정하는 주거에는 거주하는 공간 뿐 아니라 집을 둘러싼 계단, 엘리베이터 등 '위요지'도 포함된다. 마당 또한 위요지 개념에 포함되기에 사생활의 보호, 즉 '주거의 평온' 상태가 깨졌다면 주거침입이 인정된다"며 "또한 이 사건으로 기소되기에 앞서 집주인과 길고양이 문제로 다툼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거주자의 의사에 반해서 들어간 것이므로 범죄 목적이 아니거나 공익적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 주거침입이 인정됐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만약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나 야생동물에게 물리거나 공격당하는 등 동물권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었다면 어느정도 정당행위로 판단됐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호암)는 "주거침입죄는 단순히 주거를 침입해서 성립하는 죄가 아닌 거주자가 주거에서 누리는 평온이 깨졌느냐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여성이 샤워를 하고 있는데 바깥에 난 창문을 통해서 지켜보거나 초인종을 지속적으로 누른 경우도 주거침입죄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며 "A씨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마당을 향해 사료만 뿌렸다고 해도 주거의 평온이 깨졌다고 판단되면 주거침입이 인정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는 "피해자의 마당 대문이 창살로 되어 있었기에 굳이 마당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고양이를 불러서 밥을 주는 등 다른 방법이 있었으므로 피고인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주거침입의 구성 요건에는 해당할 수 있다"며 "주거침입죄의 경우 성범죄나 절도 등 다른 범죄의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주거지에 들어간 사실 자체 만으로 주거침입이 인정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주거침입죄는 인정됐으나 길고양이에 사료를 주고자 했다는 피고인의 의도와 목적이 어느 정도 참작되어 벌금 50만원이라는 낮은 수준의 처벌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