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선거 개입, 대한민국은 안전할까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4.03.25 15:20
수정 2024.03.25 15:22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부르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글로벌 여론을 조작하고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리려 한다"며 중국의 한국 총선 개입 가능성을 경고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선전과 허위 정보를 전파하기 위해 매년 수십억 달러를 들여 수많은 정부 기관과 비정부 행위자를 활용하고 있으며 인터넷 채팅 포럼, 소셜미디어 플랫폼 등을 사용해 외국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며 "미국의 동맹국을 분열시키고 중국의 팽창 정책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키려 한다"고 했다.
케리 거샤넥 북대서양조약기구 펠로십 겸 대만국립정치대학 교수는 지난 1월 국내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 △선거캠프와 언론 대상 불법 자금지원 △중국 투자기업 인질화 △가짜뉴스 유포 등 중국의 대만 총통선거 개입 사례를 예시한 뒤 "대만의 선거 개입에 사용한 중국공산당의 전략·전술은 한국에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상대로 한 중국의 선거 개입 논란은 이미 수차례 쟁점이 된 바 있다. 실제 캐나다보안정보국(CSIS)은 지난해 중국의 선거 개입 내용이 담긴 기밀문서를 해제했는데, 2021년 캐나다 총선에서 중국 정부가 자유당의 선거 승리를 돕고 친 중국 후보들의 당선을 위해 선거 일선에서 공작 활동을 벌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CSIS는 중국 공산당이 경제·기술·정치·군사 분야에서 지정학적 이익을 노린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 같은 목적 달성을 위해 캐나다의 국가안보와 주권을 직접 위협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데 국가 역량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2022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시진핑 주석과 비공개 대화에서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는 사실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해외 거주 중국인들을 감시하고 첩보활동에 이용하는 시설로 캐나다 당국은 최소 6곳을 지목해 조사를 벌였었다. 국내에서도 한강변에 위치한 '동방명주'라는 중식당이 중국 비밀경찰 거점으로 지목돼 업주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특히 지난 1월 CNN은 지난해 미·중 정상회담 당시 시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올해 미국 대선에 중국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역으로 그동안 중국이 미국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을 인정한 대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2022년 11월 러시아와 중국·이란이 미국 중간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기밀 문건을 공개한 바 있다.
이 같은 정황을 고려하면 중국의 한국 총선 개입 가능성을 단순 우려로 보긴 어렵다.
오히려 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 대립의 최전선이자,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가장 위협적인 위치라는 점에서 개입의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한국과 중국의 축구경기를 앞두고 국내 포털사이트 이벤트에서 중국을 응원한다는 비율이 92%가 나왔던 사례가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지대하다.
문제는 미국·대만·캐나다와 달리 국내에서는 중국의 선거 개입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친미 혹은 친중 등 국가의 외교 방향을 놓고 생각이 다른 정파가 치열하게 토론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한일전' 또는 '신한중전' 같이 선거를 앞두고 다소 자극적인 프레임이 생산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이 만약 중국의 은밀한 선거개입의 결과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안 문제에 개입하지 말고 그저 "'셰셰'하면 된다"는 제1야당 대표의 말이 가볍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