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의 정의와 현실
입력 2008.11.1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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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대의 맑은 세상>논객을 대우하는 환경이 돼야
논객이란 간단히 말하면 옳고 그름을 잘 논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표현의 길이는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논객의 자세는 그러한 일과 논하는 범위만 가지고 훌륭한 논객이라 평가하기가 힘들다. 이를 한 단계 높여서 이야기 한다면 논객이란 넓은 지식과 교양,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주장하고, 또 믿는 것을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게 말하는 사람이 바로 품위 있는 논객이라 할 수 있다. 즉 설득력이 있는 내용을 말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뜻이 좋아도 남이 공감을 해 주지 못하면, 그 정도만큼 그 논객은 그 위상이 떨어진다는 뜻도 된다. 논객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말하기 보다는 상대를 움직일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높아진다.
논술문이란 말이 있다. 아직 명백하지 않는 사실이나 원칙에 대하여 그 진실 여부를 증명하는 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필자가 증명하는 바를 옳다고 믿게 하고 그 증명하는 바에 따라서 행동하도록 하는 기술 양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은 논술의 일반적 정의이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 역시 갑론을박할 수 있다. 여기서 독자란 그냥 일반 대중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또는 전문가 일수도 있다.
가끔씩은 논객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각 자료들을 나열하고, 주장을 한다. 이렇게 외부에서 인용한 글을 해석하여 주장하는 사람도 역시 논객이라면 논객이다. 일반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의 전개 방식과 스타일이 있고, 전문가를 상대로 1 대 1 혹은 1대 다수의 토론을 함에서도 또 그 나름대로의 스타일이 있다. 복잡하게 얽힌 상대를 이해시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혹은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강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훌륭한 논객이 되자면 자신의 분야에 넓고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 이 지식의 수집에 따라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했을 때 공감도 하고, 속되게 말해서 다른 사람과 말 쌈에서 이길 수 있다.
논객은 색채를 띠게 되어 있다. 보수냐 진보냐는 것이다. 사실 요즘 같이 첨예하게 보수와 진보 논의가 활발할 때면 중도 논객은 이도 저도 아니어서 괜히 속에서 심통 같은 것이 올라올 때도 있다. 양 쪽 다 한 방 먹이고픈 심사가 있는 것은 필자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일리가 있다. 그 말을 뒤집으면 많은 부분이 일리가 없다는 말도 된다.
일리 있음을 긍정적으로 끌어안는 논객을 양시논객이라 하고 일리 없음을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논객을 양비논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도 또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많다. 이러다 보니 발전의 발목을 잡는 논리를 펼치면 당장 발언 자리를 잃는다. 즉 논객으로서의 자격상실이다. 밥벌이를 잃어도 좋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이런 위험한 각오에서 글 쓰는 것은 중도 논객만이 할 수 있다.
강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논리보다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논리가 심리적으로 훨씬 궁색한 처지에 몰려 사유범주가 좁게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역사적으로는 보수우파들의 논리배경이 훨씬 넓다. 맹수의 잔혹성이 인간의 잔혹성으로 전이된 짐승콤플렉스로 맹수처럼 강해야 한다는 무의식집단이 보수우파이며, 노예에 대한 피해의식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전이된 노예콤플렉스로 노예화를 거부하는 무의식집단이 진보 좌파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보면 논객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한방 얻어맞고 휘청거리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태계 속에서 논객에 대해서 보다 이해해 주고 대우해 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란 생각이 든다. 논객을 대우하는 것이 꼭 현금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훌륭한 논객을 위한 기고를 할 수 있는 매체를 주선해 준다거나 문화상품권을 주어서 자기가 개발하고 싶은 분야의 책을 사보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인센티브를 잘 연구 활용하면 발전적인 공간 구성에 도움이 되고 그로 인해서 인기 있는 관광코스가 된다면 이것은 누구에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 같이 숙고할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토론 클럽에서는 이렇게 수고비를 준다고 한다. 댓글 다는 것도 고급과 저급으로 급수가 나뉘어 있다. 고급은 시간당 6000원도 받고, 고급알바는 논리정연하게 말 빨을 발휘하여 시간당 6000원 받고, 그냥 욕이나 저급한 댓글 다는 사람들은 시간당 3000~4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곳은 뉴스 댓글 뿐 아니라 방송국 홈페이지 신문사 홈페이지 각종 토론 카페, 포털 사이트 등등 매뉴얼이 수십 개 정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문직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지만 양심에 입각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면 지적 자산의 양산에 아주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지적 자산도 재산이라는 것은 이제 알려진 환경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