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전기차 저가 공습에 美 안보 위험 조사 맞불
입력 2024.03.10 07:07
수정 2024.03.10 07:07
전기차 판매량 세계 1위 비야디, 1만 3900달러 초저가 전기차 출시
中 업체들, 깊어진 내수 부진에 과잉 생산 재고 물량 떨이 기회로
美 선제 대응 조치 내놔…안보 위험 중국산 커넥티드 카 조사 명령
美 의회, 중국산 차량 관세 인상 법안 발의…현 27.5%서 125%로
중국 전기자동차 업체들이 저가 공세에 나서면서 미국과 중국 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이 과잉생산 재고물량을 ‘떨이’ 수준으로 쏟아내는 바람에 저가 중국산 차량이 미국 시장으로 밀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칼을 빼든 것이다.
중국 전기차 및 배터리업체 비야디(比亞迪·BYD)는 지난 4일 보급형 전기차 신모델 가격을 기존 모델보다 10% 이상 낮춘 가격에 선보이며 공격적인 저가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5일 보도했다. 비야디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위안(元)플러스 신모델 판매가격을 11만 9800위안(약 2216만원)으로 책정했다. 할인판매 중인 기존 모델보다 11.8% 낮췄다. 편의 기능과 색상을 추가하는 등 상품성을 강화하고도 가격은 오히려 끌어내린 것이다.
비야디는 앞서 지난달 19일 전기 및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차량(PHV)인 친(秦)플러스 2024년 모델의 최저가를 2만위안 낮춘 7만 9800위안에 내놨다. 특히 23일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1만 3900달러(약 1855만원)의 전기차 하이둔(海豚·Dolphin)을 공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테슬라의 낮은 가격대인 모델3 가격과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된다. 지난달 28일에는 준대형 세단인 한(漢)의 2024년형 모델을 2023년형보다 13.8% 인하한 가격에 판매하고, SUV인 탕(唐)도 최대 3만위안 저렴한 가격에 잇따라 출시했다.
비야디는 수출목표도 늘려 잡았다. 올해 전기차 수출 목표치는 40만대를 제시했다. 지난해 수출량 24만 2000대보다 2배 가까이 많다. 미국제조업연맹(AAM)은 보고서를 통해 "엄청나게 싼 가격대의 중국산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 들어오면 미 자동차업계는 멸종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기차 배터리업체로 출발한 비야디는 중국에서 1만 1000달러에 팔릴 정도로 싼 가격과 아우디 출신 볼프강 예거 디자이너의 세련된 디자인으로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덕분에 지난해 4분기에 52만 6000대의 판매해 테슬라(48만 4507대)를 제치고 순수 전기차 판매 세계 1위에 등극하며 테슬라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다.
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세계 시장에 내다판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보다 64% 증가한 155만대로 집계됐다. 비야디·웨이라이(蔚來·NIO) 등 중국산 전기차의 유럽시장 점유율은 2020년 1.1%에서 2023년 상반기 5.6%까지 확대됐다. 독일 시장조사업체 슈미트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2019년 0.5%에서 2023년 상반기에 8.2%까지 치솟았다.
이에 고무된 다른 중국 업체들도 가격인하 대열에 가세했다. 전기차 스타트업인 샤오펑(小鵬)자동차는 3일 대표 SUV인 G6에 대한 할인을 연장했다. 지난달 29일까지 차량 가격을 2만 위안 할인하는 행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기간을 이달 말까지 연장했다.
‘굴욕당한’ 테슬라도 이달 말까지 모델3 세단과 모델Y SUV의 기존 재고를 구매하면 최대 3만 4600위안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최대 8000위안의 보험보조금 지급을 합한 것이다. 이탈리아 피아트 소유주인 스텔란티스 그룹이 투자한 링파오(零跑)자동차(Leapmoter)는 신형 SUV C10의 가격을 기존 계획보다 5% 낮은 가격으로 결정했다. C10 전기 버전의 가격은 12만 8800위안이다.
지난 1월 예약 판매가인 15만 5800위안보다 17.3% 싸졌다. 허샤오펑(何小鵬) 샤오펑자동차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올해는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피바다’로 끝날 수 있는 격렬한 경쟁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미국 시장에는 아직 본격 진출하지 않았지만 중국산 전기차의 미 본토 상륙은 시간 문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테슬라를 제치고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에 등극한 비야디는 멕시코에 제조공장 설립을 추진하며 광대한 미국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다급한 미국은 선제 대응 조치에 나섰다. 중국산 커넥티드 카(통신연결 차량)가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며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성명을 통해 “상무부에 우려 국가(중국)의 기술이 적용된 커넥티드카를 조사하고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대부분 자동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처럼 연결돼 있다”며 “중국 커넥티드카는 우리 시민과 인프라의 민감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 데이터를 중국으로 다시 전송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중국은 불공정 관행을 사용하는 등 자동차 시장의 미래를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자동차산업 보조금 정책 등을 정면 비판했다.
이에 따라 미 상무부는 60일 간 중국산 커넥티드 카에 대한 산업계 등의 의견을 들은 뒤 관련 규제를 검토할 방침이다. 중국산 전기차나 부품 수입을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의회도 측면 지원에 나섰다. 지난달 28일 중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대폭 상향하는 법안이 발의한 것이다. 조시 홀리 상원의원이 발의한 '미국 자동차 노동자를 중국에서 보호하는 법안'은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현행 27.5%에서 125%로 대폭 올리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더군다나 이번 법안은 중국 자동차 제조사가 만든 자동차라면 생산한 지역과 상관없이 125% 관세를 부과하도록 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관세가 없는 국가에서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해도 제조사가 중국 업체라면 관세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산 전기차를 겨냥해 '안보위협론'을 부각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을 향해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일축했다. 마오닝(毛寧)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해당 발언은 허위 사실일 뿐 아니라 경제·무역문제를 광범위하게 정치화하고 안보문제화시키는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 논리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이 중국 사용자가 소유한 수억대의 아이폰이 미국으로 정보를 다시 보내는 것을 걱정해 먹통이 되기를 원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러몬도 장관은 최근 열린 한 간담회에서 "전기차나 자율주행차는 운전자나 차량의 위치, 차량 주변상황과 관련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집한다"며 "이런 정보가 중국에 보내지는 것을 원하는가"라며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안보위협론을 제기한 바 있다.
중국산 차량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아직 사실상 ‘0%’다. 그러나 비야디가 미국에 낮은 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멕시코에 제조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만큼 중국 차fid의 미 진출은 멀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번 조사가 철강·반도체에 이은 또다른 ‘무역전쟁’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 용어 설명
커넥티드 차량(Connected Car)은 인터넷이 상시 연결되면서 무선 네트워크로 주변과 갖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안전운행 기반의 내비게이션과 자율주행은 기본으로 하고 운전자 보조 시스템 기능 등을 제공하는 '스마트카'를 말한다. 스마트폰을 통한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에 차량 진단, 신용카드를 건너뛰는 결제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다 보니 해킹 위험이 있고 라이다 같은 센서장비가 데이터를 기록하는 까닭에 중국산을 쓰면 정보유출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