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노조 있다" 세 불리는 삼성 노조…위기 돌파 걸림돌되나
입력 2024.02.13 11:50
수정 2024.02.13 11:50
삼성연대 공동요구안에 공통급 5.4% 인상
전삼노도 격려금 200% 지급 요구
노조 무리한 요구 부담…"현실적 수준 합의 이뤄야"
삼성연대는 지난 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정문 앞에서 ‘2024년 근로조건 및 노사관계 개선을 위한 공동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공동요구안을 발표했다.ⓒ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위기를 지나니 또 다른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 극심한 수요 절벽으로 고전한 삼성은 노조라는 새로운 복병을 맞았다. 전삼노 등 기존 노조 외에 연대를 넘어선 통합 노조까지 출범하며 그룹 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들 노조는 각종 명목의 성과급을 요구하겠다며 그룹 내 직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작년 한 해 반도체(DS) 부문에서만 15조원의 적자를 낸 삼성은 발 빠르게 손실을 만회하는 동시에 대규모 투자로 기술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활로 모색이 시급한 상황에서 회사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는 노조와 불협화음이 지속될 경우, 자칫 글로벌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 노조는 눈에 띨 정도로 빠르게 규모가 커지고 있다. 통합 노조 형태로 신규 출범을 하는가하면, 기존 노조에도 조합원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모습이다.
먼저 이달 정식 출범하는 '삼성기업 초기업 노동조합'은 삼성 4개 계열사 노동조합을 아우른다. 2022년 삼성 12개 계열사 노조로 구성된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이하 삼성연대) 등 연대 형태가 아닌 통합 노조로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초기업 노조에 참가하는 노조는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노조, 삼성화재 리본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등 4곳이다. 규모는 각각 6000여명, 3000여명, 3000여명, 1600여명으로 합산 조합원 수는 1만3000명을 넘어선다. 여기에 창사 이후 처음 출범한 삼성전기 노조도 합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렇게 되면 전체 규모는 1만5000명으로 늘어난다.
각 계열사 노조는 작년 말부터 통합 노조 설립 추진을 두고 찬반 투표를 실시하는 등 차근 차근 출범 준비를 해왔다. 통합 노조 출범 시 계열사별 노조는 지부가 되고, 각 노조위원장은 지부장이 된다. 단체협약 체결 권한은 통합 노조 집행부에 일임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삼성연대는 지난 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4년 9대 공동요구안'을 발표했다. 삼성연대는 삼성디스플레이 노조, 삼성SDI울산노조 등 삼성 계열사 11개 조직으로 구성돼있다.
근로조건 개선 7대 요구안에는 2024년 임금 공통인상률 5.4% 외에 ▲임금피크제 개선 및 정년(만 65세) 연장 ▲리프레시 휴가 5일 보장 ▲포괄임금제 폐지 등 정당한 임금체계 전환 ▲공정한 평가제도 도입 및 하위 고과자 임금 삭감 폐지 ▲모회사·자회사 동일 처우 ▲노사 공동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을 제안했다. 한 마디로 '더 오래 다니고, 더 많이 받게 해달라'는 요구다.
노사관계 개선 2대 요구안으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직접 교섭 상견례, 교섭 시 대표이사 참석을 제안했다.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기 위해서는 최종적인 책임 및 권한이 큰 경영자가 참석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노조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집회에 참석한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삼성화재, 삼성생명 노조는 해당 기업에서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가 없는 소수 노조이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SDI와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교섭권을 가진 정식 노조가 사측과 올해 임금 교섭을 진행중이다. 이를 아랑곳하지 않은 삼성연대 행태는 그룹 내 경영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삼성연대 뿐 아니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도 올해 임금·복리후생 교섭안에서 각종 명목의 혜택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 중 최대 규모인 전삼노의 조합원 수는 8일 기준 1만7203명으로, 삼성전자 전체 직원 12만명의 약 14% 수준이다.
전삼노는 기본인상률 8.1%를 포함해 격려금 기본급 200% 지급을 요청했다. 이 외에 의료비 등 각종 명목의 복리후생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전삼노는 3차 임금 교섭에서 차별없는 격려금 지급을 달라고 했으나 사측으로부터 지급 계획이 없다고 했다고 사내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4차 교섭에서도 사측이 빈손으로 교섭에 임했다며 다음 교섭까지 교섭안이 없을 경우 교섭은 결렬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체행동을 위한 쟁의대책 위원회를 발동했다며 쟁의조정 절차를 밟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전삼노는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으로 빠르게 규모를 키우고 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직원들은 반도체 업황 악화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초과이익성과급(OPI) 예상 지급률이 0%로 책정됐다.
OPI와 함께 삼성전자의 대표적 성과급 제도인 목표달성장려금(TAI)도 하반기는 기본급의 12.5%로 책정, 상반기(25%)의 반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DS부문 내에서도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는 0%다.
'빈봉투' 성과급 쇼크를 본 직원들은 기본급 8.1% 인상·성과급 200%를 요구하는 전삼노 주장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전삼노는 성과급 예상 지급률이 공지된 12월 말 처음 1만명을 돌파한 이후 한 달여 만에 66% 가량 조합원 수를 늘리는 등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성과를 내면 보상이 따라오는 것은 맞지만, 현재 삼성이 처한 상황을 보면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반도체에서만 15조원 가량의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삼노를 비롯해 삼성 내 노조들이 다소 무리한 교섭안을 내걸고 있는 것은 존재감을 부각시켜 더 많은 노조원을 끌어들이고, 나아가 회사와의 교섭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겠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통합 노조 역시 이 같은 전략적 움직임을 염두한 행보로 풀이된다.
노조 구성원 규모가 커지면 노조 성격은 강성으로 짙어지고, 요구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쟁의행위가 잦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앞서 전삼노는 교섭 결렬 시 단체 행동을 시사했다. 다른 노조에서도 이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AI(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며 산업간 합종연횡이 활발해지는 상황에서는 추격자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 개발과 투자가 요구된다. 그런 가운데 노조와의 엇박자가 지속될 경우 오랜 기간 지켜온 삼성 경쟁력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노조는 삼성의 현 상황을 고려해 과도한 임금 및 지나친 경영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며 "회사는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경영 상황을 설명하는 한편 최대한 가능한 지원책을 제시해 합의를 이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