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김서형, 참신한 멜로 조합의 등장 ‘좋아하면 울리는’ [홍종선의 연예단상㊳]
입력 2024.02.05 14:06
수정 2024.02.05 15:18
‘도그데이즈’, 개로 시작해 사람으로 완성한 웰메이드 설 영화
미국의 리뷰 모음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는 영화에 대한 ‘신선도’를 수치화해 평가한다. 너무 오래돼 ‘썩은 토마토’(Rotten Tomatoes·로튼 토마토)와 달리 얼마나 ‘신선한 작품’인가를 본다. 액션이 끝내 주는 영화, 웃긴 영화, 슬픈 영화, 감동 어린 영화가 어느 정도로 끝내 주게 웃기고 슬프고 감동적인가에 있어 기존에 본 적 없는, ‘기시감 없이 신선’하다는 게 호평의 큰 축을 형성하는 관객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영화 ‘도그데이즈’를 통해 결성된 배우 유해진-김서형의 멜로 조합은 신박하다. 신조어 쓰기를 즐기지 않지만, ‘매우 참신하다’는 뜻의 ‘신박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은 만큼 신선한 묶임이다.
두 배우를 한 화면에서 보는 것도 반가운데 ‘썸’(something, 아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사귀는 듯이 가까이 지내는 관계)을 탄다. 적대적이었던 두 사람이 인간적으로 친해지다 로맨스 감정이 싹트는 설정은 흔하지만, 또 그게 사랑의 법칙이기도 하니 딴죽을 걸기는 힘들다.
그럼 이 관계가 왜 신선하게 다가올까.
첫째는 예상을 빗나가서다. 그동안 커플로 묶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괜히 커플 캐스팅하지 않은 게 아니다, 말하기엔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피도 눈물도 없는 ‘쓰앵님’과 영화 ‘베테랑’의 그 의뭉스러운 최 상무가 멜로를 하는데 어울린다고? 그렇다. 제법 달달하다. 김서형에게는 상대를 찌르는 칼이나 활이 들려 있지 않고, 유해진에게는 상대를 함정에 빠트릴 회계 장부나 비자금 목록이 손에 없다.
둘째는 두 배우 모두 못 보던 모습이라 그렇다, 특히 김서형이 그렇다. 역시 연기파 배우들이라 연기 변신했구나, 수준이 아닌 형언하기 힘든 무엇이 있다. 애써 표현해 보자면, 큰 키만큼이나 연기 개성과 카리스마 넘치는 김서형이 유해진과 짝을 이루니 한 마리 치와와처럼 그렇게 작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다.
김서형 앞에 선 유해진은 그 어느 때보다 듬직하고 멋스럽다. 사실 유해진이 연기한 민상은 연애도 가족도 모르고 일과 돈뿐인 일상을 사는 밉상인데 반려견들과 견주들, 동물병원 직원들과 마음을 나누는 김서형표 진영 앞에서는 짐짓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고 그 모습이 편안해 보기에 좋다. ‘달짝지근해: 7510’에 이어 연속 ‘지천명 멜로장인’으로 자리를 굳혀가는 오늘이다.
주로 예능에서 보던 넉넉한 품의 유해진, 순한 반달눈의 김서형을 스크린 위에서 보니 ‘사귀어라, 사귀어라’ 민상과 진영의 연애를 응원하는, 내 친구들 일인 것처럼 밀어주는 내가 있다.
꿈은 진짜 이뤄지는 건가. 영화 말미, 유해진은 ‘뽀뽀’라 표현한 키스 신이 드디어 등장한다. 어찌나 저돌적인지 ‘한 번 할까요?’라고 말하던 민상의 발언은 견공들 관련이었지만, 결국 사람의 일이 될 기세다. 강아지 영화인 줄 알았던 ‘도그데이즈’가 ‘러브 액츄얼리’ 같은 인생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것처럼.
저돌적 키스의 주인공이 민상이라는 오해는 금물이다. 진영이어서 더욱 달콤한 키스다. 솔로들, 오래된 연인들의 멜로 감성 부추기는 이 장면에서 배우 유해진의 주목할 만한 애드리브도 탄생했다.
원안대로 저돌적 기습을 감행하는 열혈 연기파 김서형의 매운 손바닥이 유해진의 귀퉁이에 닿았고, 영화를 통해 꼭 확인해 봤으면 싶은 대사가 즉흥적으로 완성됐다. 보면서 들으면 너무 재미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귓속에서 종이 울린다’는 첫 키스의 추억을 불러오는 중의적 표현이다.
김서형-유해진, 유해진-김서형의 신선한 만남 외에도 영화 ‘도그데이즈’’(감독 김덕민, 제작 CJ ENM, 공동제작 JK FILM·CJ ENM STUDIOS·자이온 이엔티㈜, 배급 CJ ENM)의 신선도를 높이는 요소는 많다.
윤여정(건축가 민서 역)이 37년 차 나는 후배 탕준상(오토바이 배달꾼 준우 역)에게 인생 명언을 전하는 장면들은 깊은 울림을 전하고, 초보 엄마 정아 역의 김윤진 분은 가슴으로 낳은 딸 지유를 연기한 깜찍한 어린이 배우 윤채나와 첫 눈물을 뜨겁게 길어 올리고, 민서가 ‘어른으로서’ 지유에게 큰 양보를 하는 장면에서는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현우는 여자배우 김고은, 남자배우 다니엘 헤니와도 잘 어울리고 커다란 반려견 딩크와의 호흡도 좋다.
가족이 모이는 설 명절, 손수건 준비해서 극장 나들이 어떨까. 유년에서 노년까지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웰메이드 휴먼 영화다. 중년인 관객이 어린 지유, 혹은 노년의 민서에게서 ‘내 이야기’를 찾거나 위로 받을 수 있는 ‘도그데이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