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아직도 연탄 피우고 삽니다"…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에 가다 [데일리안이 간다 6]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입력 2024.01.16 05:00
수정 2024.01.16 05:00

데일리안, 15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찾아가…인적 드물고 마을 곳곳엔 연탄 피운 흔적

백사마을 주민 대부분 영세가정 및 독거노인…연탄은행서 매달 연탄 150~200장 지원받아 난방

연탄은행 "100% 후원금 운영, 연초엔 후원 끊겨…꽃샘추위 앞두고 연탄 보릿고개 발생할 수도"

전문가 "정부·서울시, 공공임대주택 이전 등 주거대책 마련해야…안전한 에너지원 난방지원 절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끝자락에서 내려다본 전경.ⓒ데일리안 박상우 기자

동장군의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면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백사마을 주민들은 더욱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백사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독거노인으로 연탄은행에서 매달 지원받는 연탄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재단 후원금이 감소하고 있어 연탄지원량이 언제 줄어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문제를 단순히 동절기 난방 문제가 아닌 주거, 노인 문제 등으로 확대시켜 바라봐야 한다며 공공임대주택 이전 등 주거대책 마련을 위해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15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불암산 자락을 따라 10여분간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자 백사마을이 나타났다. 백사마을이란 이름은 '중계동 산 104번지'라는 옛 주소에서 따왔다.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과거 개발을 위해 용산과 청계천, 영등포 등 판자촌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생겨났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건물이 가득한 이 마을의 시간은 1970년대에 멈춘 듯했다. 봉사자들이 그리고 간 벽화를 마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얼룩진 콘크리트 벽돌 담벼락과 벗겨진 페인트칠 등 세월의 흔적은 피할 수 없었다. 인적도 드물어 집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뿌연 연기만이 여전이 이 마을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골목 곳곳에는 비닐에 담긴 채 쌓여 있는 연탄재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백사마을에서 연탄은 겨울철 맹추위로부터 주민들을 지켜주는 가장 소중한 생필품이다. 백사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영세가정과 독거노인으로 80여가구가 연탄을 피우며 살고 있다. 대부분 가정에 도시가스 보일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아직도 연탄을 난방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백사마을 골목 곳곳에 버려진 다 쓴 연탄재들.ⓒ데일리안 박상우 기자

이 곳에서 만난 김모 할아버지는 "올 겨울은 유난히 더 추워서 연탄을 안 때고는 절대 하루를 날 수 없다. 하루 평균 5~6장의 연탄을 사용한다"며 "연탄은행에서 매달 연탄을 지원받아 때고 있다. 나중에 모자르지 않게 잘 계산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밤에도 자다가 일어나서 새 연탄을 피워야해 불편한 점은 있다"면서도 "그래도 연탄을 때면 따듯하게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에 따르면 한 가구당 하루 평균 연탄 사용량은 4~6장이다. 연탄 1장의 지속시간은 제조사마다 품질이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4~5시간이다. 연탄은행은 매년 10월~3월까지 노인들에게 1회 150~200장 상당의 연탄을 제공한다. 연탄 1장당 가격은 평균 850원으로, 연탄은행의 지원이 없으면 주민들은 연탄값으로만 월 20만원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


허기복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는 "연탄은행은 100%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연말에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지만, 연초가 되면 후원이 거의 끊긴다"며 "이렇다 보니 후원이 많은 12월, 1월에 3~4월까지 땔 수 있는 연탄을 확보해야한다. 올해도 3월까지 어르신들에게 연탄을 지원하려면 30~50만장은 더 모아야한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에 위치한 서울연탄은행 건물.(왼쪽), 같은 마을 한 이발소 내부에 설치된 연탄난로(오른쪽).ⓒ데일리안 박상우 기자.

이어 "2022년과 비교하면 2023년은 12월 둘째주까지도 어려웠다. 후원이 줄어들면 어르신들에게 지원하는 연탄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후원이 줄어 100장밖에 못 드릴 때도 있었다. 연말에 연탄을 많이 모아두지 못하면 꽃샘추위를 앞두고 연탄 보릿고개가 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백사마을을 비롯해 무허가 주택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은 도시가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들 대부분은 빈곤층이라 이사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며 "이들은 에너지빈곤층이며 동시에 주거빈곤층이다. 동절기 난방문제뿐만 아니라 주거문제, 노인문제 등 다중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함께 나서 빈곤한 지역의 커뮤니티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중앙정부 차원에서 빈곤지역 전수조사를 해서 이들이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거주지를 이전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측면에서 주거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연탄은 가스중독 등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요소가 많다. 빈곤층들이 연탄 대신 다른 수단의 에너지원을 활용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