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 18개 상임위원장 독식…민주당 입법폭주 [정치의 밑바닥 ⑥]
입력 2023.12.15 06:00
수정 2023.12.15 06:00
군사독재 시절에나 일어났던 일
전·후반기 모두 법사위원장 갈등
국회는 4년 임기를 2년씩 나눠 전·후반기 두 차례 국회의장과 국회부의장 2명, 상임위별 위원장을 선출한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의석수에 따라 여야가 나눠 맡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2020년 4월 총선에서 압도적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전반기 원구성에서 18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민주당 의원들로 채웠다. 군사독재 시절 이후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다수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이었다.
법사위원장 분배가 문제였다. 지난 2004년 17대 국회부터 원내 1당이 국회의장을 맡고 2당이 법사위원장을 나눠 맡는 것이 보편화됐다. 민주당이 1당으로 국회의장 몫을 가져 갔으니, 법사위원장은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몫이었다.
민주당은 이 암묵적인 '룰'을 지키지 않았다. 20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 미보유로 원활한 국정운영 및 입법활동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판단해 의석수를 바탕으로 '의장, 법사위원장 동시 사수'를 밀어붙인 것이다.
당시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를 향해 의석수 비율(11대 7)대로 예결위 등을 포함한 7개 상임위를 미래통합당에 양보하는 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주 원내대표는 "법사위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협상 포기를 선언했다.
국회 정각회장으로 독실산 불교신자이기도 한 주 원내대표는 당시 전국 사찰을 돌았고, 김 원내대표가 강원도 한 사찰로 주 원내대표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이렇게 2020년 21대 전반기 국회는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석권'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안고 출발하게 됐다.
당시 원내수석부대표였던 김성원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은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당시 문재인 정부의 민주당은 부동산 정책부터 소득주도 성장 정책 등을 이슈화 시켜 사회주의적 부동산정책을 밀어 붙였다"며 "모든 상임위원장을 차지하면서 관련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고 회상했다.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 몫의 국회부의장은 정진석 의원이 내정됐는데, 정 의원은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내놓지 않으면 부의장직을 고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의원총회에서 "정치 대의를 위해 개인의 영달이나 안락함을 내려놓겠다"며 "우리 당 3선 의원들도 상임위원장을 안 맡는데 혼자 국회부의장을 맡을 수 없다"고 천명했다.
1년 2개월 만에 상임위 재분배…드디어 국회 정상화?
민주당은 1년 2개월 동안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민주당의 분위기 급변한 것은 2021년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모두 국민의힘이 차지한 것이다. 국민의 버림을 받자 민주당 내에서도 입법 독주와 일방적 국정 운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2021년 8월 31일 당시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연쇄 회동을 하고 21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 배분을 11대 7로 하기로 발표했다. 같은날 본회의에서 그동안 공석이었던 야당 몫 국회부의장으로 정진석 의원을 선출했다.
민주당이 전반기에 운영위·법사위·기재위·과방위·외통위·국방위·행안위·산중위·복지위·정보위·여가위 등 11개 상임위원장을, 국민의힘이 정무위·교육위·문체위·농축산위·환노위·국토교통위·예결특위 등 7개 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핵심 쟁점인 법사위원장의 경우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민주당이 계속 맡되 후반기에 야당인 국민의힘에 넘기기로 했다. 대신 법사위 기능을 체계·자구 심사에 국한하기로 했다. 또 본회의에 부의되기까지 체계·자구 심사 기간을 120일에서 60일로 단축했다.
후반기 국회서도 법사위원장 가져가겠다는 민주당
2022년 5월 30일 21대 전반기 국회가 종료됐다. 여야는 후반기 원 구성 협상에 돌입했지만 협상이 결렬되며 국회는 53일간 공백상태가 됐다. 이번에도 법사위원장 배분이 문제였다.
윤호중·김기현 원내대표의 합의에 따르면 후반기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몫이었다. 그런데 2022년 3월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 입장이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또 국회의장뿐 아니라 법사위원장까지 모두 차지하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민주당은 명목상 국민의힘을 향해 '검수완박' 합의 이행 촉구를 조건부로 제시했다.
당시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 몫으로 하겠다는 것은 여야 합의사항"이라며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이 조건 저 조건 내걸고 하는 것은 결국 협상하지 말자는 얘기"라고 항변했다.
'민생을 내팽개치고 싸움만 하고 있다'는 악화하는 여론 속에서 당시 양당 원내대표인 권성동·박홍근 원내대표는 '조속한 국회 정상화'에 방점을 찍고 7월 22일 원구성 협상을 마무리했다.
민주당은 정무위·교육위·과방위· 문체위·농축산위·산중위·복지위·환노위·국토위·여가위·예결위 등 11개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가져갔다. 국민의힘은 법사위를 비롯해 운영위·기재위·외통위·국방위·행안위·정보위 등 7개 상임위원장을 획득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내세워 법안 단독처리를 강행했다. 양곡관리법·간호법·노란봉투법·방송3법 등이 모두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단독 통과했다. 법사위를 건너뛰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제도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은 '쌍특검(대장동·김건희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최근에도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며 "21대 국회는 민주당의 입법 폭주·국회 독주가 정치의 밑바닥을 보여준 사례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라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