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를 위한 김진표 국회의장의 숨은 노력 세 가지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3.11.01 16:39
수정 2023.11.01 17:04
尹 시정연설 국회 방문에 '협치의 장' 마련 주력
'화합의 꽃밭' 꽃말까지 고려…새 단장 지시도
'상생' 의미 담은 진관사 오찬 메뉴 선정도 고심
10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지난해 5월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 같은 해 10월 2023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이어 세 번째 방문이었다. 대통령 시정연설 일정은 통상 5부 요인, 여야 지도부와 함께하는 사전환담과 시정연설로만 이뤄지지만, 이날은 달랐다.
대통령이 국회의장단과 정당 지도부 등을 청와대(현 대통령실)로 초청한 사례는 많았다. 하지만 이날은 윤 대통령이 직접 국회 상임위원장단과 간담회 및 오찬을 했다. 대통령과 상임위원장단이 국회에서 오찬을 한 건, 윤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자 역대 첫 사례다. 윤 대통령의 관례를 깬 행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살얼음판을 걷던 정국에 '협치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이러한 '협치의 장'을 완성하는 데에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윤 대통령과 상임위원장단 오찬도 김 의장의 주최로 이뤄졌다. 김 의장은 윤 대통령과 상임위원장단 간담회를 마치면서 윤 대통령을 향해 "오늘 이 자리가 국회의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다"며 회동 정례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철통 같은 보안 속에 진행된 협상 과정과는 별개로 김 의장의 세심한 배려는 세 가지 장면에 녹아있었다.
장면 ① 시정연설을 앞두고 여야가 신사협정을 맺다
대통령 시정연설을 1주일여 앞둔 지난달 23일, 김 의장의 주재로 여야 원내대표 비공개 회동이 있었다. 이날 국회의장의 제안으로 여야가 대통령 시정연설, 각 교섭단체 대표연설 등 국회 본회의장 연설 시간에 고성과 야유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바로 다음날 여야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대통령 시정연설을 앞두고 간담회와 오찬 일정까지 성사시키기 위한 김 의장의 '사전 포석'으로 해석된다.
장면 ② 이날의 콘셉트는 화합…국회 '화합의 꽃밭'을 단장해라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회 상임위원장단 등이 간담회를 마치고 국회본청에서 사랑재로 이동하는 길, 참석자 모두가 사랑재 둘레에 조성된 화합의 꽃밭을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이 꽃밭은 2009년 김형오 국회의장 재임 시절에 조성됐다.
김 의장은 대통령의 방문에 대비해 '화합의 꽃밭'의 취지에 맞게 다채로운 꽃들로 꽃밭을 다시 정비하고 단장하라는 지시를 했다. 대통령의 사랑재 오찬 일정이 당시엔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화합의 장'을 반드시 마련하겠다는 김 의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의장은 특히 꽃말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고결'과 '짝사랑'을 의미하는 노란 국화, '그리움'과 '인내'의 청하 쑥부쟁이, '반드시 올 행복' 꽃말을 가진 메리골드, '신뢰'와 '지혜'의 아스타 등을 심었다.
장면 ③ 비서실장에게 '화합의 오찬 메뉴'를 찾아라 특명
김 의장이 주최한 대통령-상임위원장단 오찬 메뉴가 특히 화제가 된 이유는 단연 오찬 메뉴에 담긴 의미 때문이다. 천년고찰 진관사에서 준비한 오찬의 테마는 '화합과 소통을 염원하는 상생의 밥상'이었다. 길상(吉祥)과 화합을 뜻하는 오색두부탕과 가을 뿌리채소 위주의 계절밥상으로 차려졌다.
잣죽·물김치·잡곡밥·아욱국·김치·장아찌·나물무침·표고버섯구이·연근조림·씀바귀 겉절이·배추전 등도 테이블에 올랐다. 여기에 김 의장은 유서 깊은 사찰 음식과의 궁합을 고려하여 솔차를 곁들임 음료로 내놓았다. 모두 김 의장이 조경호 의장비서실장에게 '화합의 메뉴'를 찾아보라는 특명 하에 마련된 것들이다.
김 의장은 오찬 자리에서 "대통령과 국회가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을 서로에게 보약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또 "통즉불통(通則不痛), 소통해야 국민이 아프지 않다"고 했다. 이날 준비한 재료를 모두 소진할 정도로 오찬 메뉴가 참석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건, 김 의장의 화합 의지가 참석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한 명의 아이를 올곧게 키워내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유명한 격언이다. 마찬가지로 협치(協治)의 싹을 틔우고 자라나게끔 하기 위해서도 온 국회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온 국회의 힘을 모아 협치의 희망을 발아시키기 위해서는 국회의 수장인 김진표 의장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했다.
국회의장의 세심한 노력을 가까이서 지켜본 국회출입기자로서 여야 신사협정 막후 주선에서부터 꽃말까지 고려한 화합의 꽃밭 단장, 그리고 오찬 메뉴에 이르기까지, 김 의장의 노력이 배신당하는 일 없이 오롯이 협치라는 결실로 꽃피워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