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무죄…"학문적 표현, 형법 잣대 아닌 학계 토론 거쳐야" [디케의 눈물 130]
입력 2023.10.28 05:21
수정 2023.10.28 07:45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저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26일 대법 무죄 판단
재판부 "문제된 표현, '위안부 자발적 매춘' 주장 뒷받침하려 쓴 것 같지 않아"
법조계 "학문의 영역, 전체맥락·전개방식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판단해야"
"최근 대법서 명예훼손 무죄 판결 늘고있는 추세…표현의 자유 중시 차원"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조계에선 "학문의 영역은 전체 맥락, 전개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학문적 표현물에 대한 평가는 형법적 잣대나 처벌이 아닌 학계의 공개적 토론이나 비판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26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저서의 전체적 내용이나 맥락에 비춰 보면 박 교수가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 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당 표현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앞서 박 교수가 2013년 8월에 낸 '제국의 위안부' 책 속에는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는 동지적 관계' 등 문구가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이듬해 6월 당시 나눔의집 소장이던 안신권씨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9명 이름으로 박 교수를 고소했고 검찰은 그해 11월 명예훼손 혐의로 박 교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1심은 피해자가 특정되거나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반면 2심은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허위 내용이라고 보고 유죄로 판결을 뒤집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법무법인 건양 최건 변호사는 "학자들이 발표하는 여러 가지 견해는 학계 혹은 사회에서 걸러져야 되는 것인데 발표 자체 만으로 명예훼손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학문적 표현물에 대한 평가를 형사적 잣대나 처벌에 의하기보다도 학계의 공개적 토론이나 비판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의 판결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리더스 김희란 변호사는 "학문의 영역, 언론의 자유 영역 등 보호대상이 될 수 있는 영역에서의 행위에 대해서는 전체 맥락, 집필의도, 논리적 흐름, 서술체계 및 전개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명예훼손죄 성립 요건인 사실의 적시와 학문적인 의견의 표명 그 둘 사이 경계선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살펴보고 학문의 자유를 명예훼손의 취지에 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해석해 내린 판결로 보인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에이앤랩 신상민 변호사는 "명예훼손은 허위든 진실이든 사실관계에 대해 표현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사실적시가 아닌 단순 의견표명이라면 성립이 안 될 수 있다"며 "법원에서도 '있다', '없다'와 같이 존재 여부에 대해서 표현하는 것만 사실로 보고 감정이나 의견이 들어간 경우 사실적시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추세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대법원에서 명예훼손 사건을 무죄로 판결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차원에서 다소 내용에 허위 사실이 있더라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거나, 사실적 표현이 아닌 단순히 의견을 제시한 정도로 판단된다면 무죄로 보는 것이다"고 부연했다.
반면 법무법인 한일 전문영 변호사는 "학문적 주장 혹은 의견 표명이라고 해도 묵시적으로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을 적시한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며 "아울러, 사실을 적시했어도 비방할 목적으로 타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객관적으로 저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이 역시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