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업의 벼랑 끝에서 본 세기말 시네필이 던지는 질문 [D:영화 뷰]
입력 2023.10.15 14:24
수정 2023.10.15 14:24
'노란문 : 시네필 다이어리' 10월 27일 공개
디지털 시대의 영화 소비와 관람 방식이 크게 바뀐 현재, 세기말 시네필들은 어떻게 영화에 열광하고 향유해 왔을까. 최근 개봉한 '킴스 비디오'가 기가 막힌 소동극으로 잠들어있던 영화광들의 영혼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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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스 비디오'는 지금은 사라진 1980년대 뉴욕, 영화광들의 성지였던 비디오 대여점 '킴스 비디오'의 행방을 쫓는 다큐멘터리다. '킴스 비디오'는 김용만 씨가 운영하던 세탁소 한편에 마련했던 작은 비디오 대여 공간이 성황을 이루자, 미국 전역 내 11개 점포 25만 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체인점으로 성장한 비디오 대여 업체다.
'킴스 비디오'의 회원이었던 데이비드 레드먼, 애슐리 사빈 감독은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며 2014년 문을 닫았던 '킴스 비디오'의 김용만 사장을 찾는 동시에 5만 5000개의 비디오가 현재 어디로 갔는지 추적해 나간다.
5만 5000개의 영화 비디오가 잠들어있던 곳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소도시 살레미였다. 살레미로부터 소장 공간 제공과 함께 디지털 변환, 기존 회원들에게 무료 관람과 대여 약속을 보장 받고, 그 곳에 기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약속이 무색하고 김용만 사장의 컬렉션은 현재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못하고 방치돼 있었다.
이에 데이비드 레드먼, 애슐리 사반 감독은 가짜 대본, 가짜 배우를 활용해 이 방대한 비디오를 훔치는 작전을 펼친다. 그리고 샬레미와의 오랜 협의 끝에 새로운 공간에서 활용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이 비디오들이 보관된 곳은 2022년 3월 31이 개관 이후 1700여 편 이상 대여했다.
'킴스 비디오'의 행방을 애타게 찾는 건, 김용만 사장도, 영화 감독도, 제작자도 아니다. 자신을 만들어 준 영화들이 사라지는 이대로 볼 수 없었던 시네필들이다. 그리고 '킴스 비디오'는 시네필들이 영화에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유쾌하게 보여준다. '킴스 비디오'는 정식 유통 비디오가 아닌 해적판을 대여해 각종 소송과 FBI 수사를 받기도 했는데, 훔친 영화들을, 또 다시 훔쳐 성취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재기 발랄하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넷플릭스의 신작 '노란문: 시네필 다이어리'도 90년대 시네필들의 행적을 되짚으며 추억을 선사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90년대 초, 시네필들의 공동체였던 '노란문 영화 연구소'의 회원들이 30년 만에 떠올리는 영화광 시대와 청년 봉준호의 첫 번째 단편 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간다.
'노란문 영화연구소'는 20세기 말인 1993년, OTT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 최종태 감독과 봉준호 감독 등 영화를 사랑했던 시네필들이 모여 오직 ‘영화’를 꿈으로 삼았던 동아리다. 봉준호 감독의 미공개 첫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룩킹 포 파라다이스'(Looking For Paradise)의 유일한 관객이기도 한 영화 모임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알리는 90년대의 기록물이자 그 시대에 영화에 미쳐있었던 시네필을 향한 러브 레터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는 청년들의 모습은, 각자 보는 이들에 품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는 용기와 격려가 된다.
영화로 시작해서 영화로 끝을 맺는 이 다큐멘터리들은 OTT가 주류가 되고 영화 산업의 위기가 계속해서 언급되는 현재, 더욱 깊이 박힐 수 밖에 없다. 영화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공동체의 경험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와 함께, 추억의 선을 넘어 영화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도 다시금 질문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