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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말하는 민주당이 낯설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3.09.26 09:08
수정 2023.09.26 09:08

서로 이해·존중·공존이 민주주의 기본원칙

이재명, 스스로 불체포 특권 포기 국민 앞에 약속

극언 퍼부으며, 가결표 의원 색출 응징 목소리

진중권 교수, ‘정당이 아니라 조폭집단’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길을 가다가 ‘무너지는 민주주의, 민주당이 다시 세우겠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보았다. 민주당 소속 지역 국회의원 명의였다. 자주 다니는 곳이라서 전에도 그 현수막이 봤었을 텐데,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걸 보면 당시에는 그냥 얼핏 보고 지나친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꽂히듯 눈에 들어온 건 최근 민주당의 행태가 오버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라는 주장에 동의할 국민도 많지 않겠지만, 지금 민주당이 그런 주장을 한다는 건 누워서 침 뱉는 격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종·사상·종교·사회적 신분 등이 다르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공존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의견은 타협하고 조절해 나아갈 때 민주주의는 성숙하고 발전한다. 그런데 요즘 민주당의 모습은 이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21일에 있었던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는 민주당 의원 최소 29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표결 직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가결에 대한 책임 문제를 놓고 친명계와 비명계가 거칠게 대립했다. 그리고 비명계인 박광온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회의에서는 박 원내대표와 친명계인 조정식 사무총장 등 정무직 당직자들이 동반 사퇴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하는데, 이 대표가 조 사무총장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결국 박 원내대표만 책임지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또한 통합과 탕평적 차원에서 임명되었던 비명계 송갑석 최고위원도 사퇴했다.


가결파로 보이는 비명계의 주장은 논리가 명확하다. 그동안 이 대표는 스스로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었는데, 그 대국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왜 해당행위냐는 것이다. 또한 혁신위의 1호 안건이었던 ‘불체포 특권 포기’를 민주당 의총에서 추인했으므로 그것이 당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명확히 번복하지도 않고서, ‘대국민 약속을 지키고 방탄 프레임을 깨고 당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기 위한 정치적 행동을 해당행위라고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주장한다(조응천 의원).


한편, 가결표가 예상보다 많이 나온 것은 이 대표가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라고 대국민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표결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체포동의안 부결을 촉구하는 글을 올림으로써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도 친명계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해당행위’, ‘일제 시절 동포를 탄압한 친일파’, ‘검찰에 당 대표를 팔아먹는 저열하고 비루한 배신과 협잡’, ‘암적 존재’라는 등 극언을 퍼부으며,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해 응징하겠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성 지지자들도 ‘반란표 색출’에 나서며, ‘정치생명을 끊겠다’고 벼르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정당에서나 당내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대립과 갈등은 늘 있었다. 또한 자신과 의견이 다른 국회의원을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심과 소신에 따라 가결 투표한 것을 문제 삼아 해당 국회의원들을 색출해 처벌한다는 것은 결코 민주적인 모습이 아니다. 오죽하면 진중권 교수가 ‘정당이 아니라 조폭집단’이라고 까지 질타했겠는가.


더욱 한심한 것은 강성 지지자들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부결표를 던질 것’인지 밝히라고 요구하자 111명(9월 21일 15시 30분 현재)의 의원들이 앞다퉈 부결 인증샷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어기구 의원은 투표용지에 ‘부’라고 쓴 뒤 의원 명패를 함께 놓고 사진을 찍어 이 대표의 팬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국민의 대표,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일부 강성 지지자들에게 휘둘려 비밀투표의 원칙마저 스스로 저버리는 게 민주당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인지 묻고 싶다.


남을 비판하려면 스스로가 그런 비판을 받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 ‘조폭집단’이라는 모욕적인 평가까지 받는 민주당에서 ‘무너지는 민주주의’ 운운하는 것은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것은 개혁적이고 민주적이고 서민과 소수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당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의 민주당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민주당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그래서 참 낯설기만 하다.

글/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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