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함 옆 가방 주워서 기소된 80대, 무죄 받은 까닭은? [디케의 눈물 120]
입력 2023.09.21 05:16
수정 2023.09.21 05:30
법조계 "점유 이탈물 횡령죄 성립하려면 습득자의 불법영득의사 있어야 혐의 적용 가능"
"피고인 형사사건 무죄 받았기에…피해자가 민사소송 제기해도 손해 배상받기 어려울 것"
"점유 이탈물 횡령 범죄, 금액에 따라 처벌 수위 달라져…금액 클 경우 징역형 받을 수도"
"바닥에 버려진 물건 습득한다면 경찰에게 주는 것이 최선…안 되면 경비실이라도 맡겨야"
재활용품 수거함이 있는 곳에 있던 가방을 주운 80대 노인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서는 점유 이탈물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권한 없는 자가 소유권자의 물건을 불법적으로 처분하려는 의사가 있을 때,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사건 피고인이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받았기에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손해배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21일 서울북부지법 형사6단독 송혜영 부장판사는 점유이탈물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80대 노인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가방의 주인 B 씨는 맥북 1대, 에어팟 1개, 아이패드 프로3 1개, 현금 200만원 등이 가방에 들어있었다고 주장했다. B 씨가 가방을 되찾았을 때는 맥북과 현금이 사라졌다. A 씨는 "가방이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있어 버린 줄 알고 주워간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모임 서치원 변호사는 "점유물 이탈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 및 처분하려는 불법영득의사가 있어야 한다"며 "재판부는 이에 대한 충분한 증명이 없다고 봤다. 특히 범죄사실에 대해서도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 변호사는 "피해자는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서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하여야 할 것"이라면서도 "피고인이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받은 만큼 피해자가 손해를 배상받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이에스티 법률사무소 조의민 변호사는 "공소 사실 자체가 점유 이탈물 횡령죄이기에 재판부가 맥북을 5000원에 처분한 것에 대해선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특히 재활용 수거함 옆에 있던 가방을 들고간 것을 두고 '내가 점유를 상실했다'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부분"이라며 "그렇기에 맥북을 판 것 자체는 이 피고인의 혐의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 변호사는 "만약 피고인이 20~30대 청년이고, 가방 안에 맥북과 같은 전자기기들이 있었던 것을 알았다면 점유 이탈물이라고 인식했을 것이기에 판결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라며 "20~30대 청년은 이같은 물건들을 봤을 때, '누군가 소유를 포기했구나'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닌 어떠한 이유로 점유가 이탈된 상태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80대 노인과 달리 20~30대 청년이었다면 고의성이 입증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킹덤컴 법률사무소 박성남 변호사는 "점유 이탈물 횡령 범죄의 경우 금액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진다. 금액이 클 경우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고, 금액이 적으면 벌금형이 나올 수도 있다"며 "이 사안처럼 대략 300만원 상당의 금액의 점유 이탈물 횡령을 벌였다면 벌금형에서 끝나는 사안이다"라고 분석했다.
동시에 박 변호사는 "바닥에 버려진 물건을 습득했을 때,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려면 경찰에게 주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물건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두고 오는 것도 방법이긴 하다"면서도 "다만 자리에 두고 오면 방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번거롭겠지만, 경비실 같은 곳에라도 물건을 맡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