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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위반 北, 왜 말로만 파기 운운했나 [군사합의 5년 ②]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3.09.18 11:15
수정 2023.09.18 14:35

北, 대북성과 목마른 文정부

겨냥해 군사합의 파기 시사

尹대통령 '경고' 이후 '잠잠'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당시 북한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9·19 남북 군사합의서)에 서명한 이후 악수를 하는 가운데, 뒷편에 서 있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9·19 남북 군사합의는 북한에 유리한 합의로 평가되지만, 정작 선을 넘은 건 북한이었다.


북한은 '2022 국방백서' 기준으로 총 17회 남북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연도별 위반 횟수를 살펴보면 △2019년 1회 △2020년 1회 △2022년 15회 등으로 나타났다.


정부별로는 문재인 정부에서 2회, 윤석열 정부에서 15회 위반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윤 정부 들어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별 대응과 전개 양상, 특히 북한의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北이 군사합의 파기 운운하면
민감하게 대응한 文정부
"대북정책 상처 난다고 본 듯"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최근 통일연구원 주관 포럼에서 "북한이 군사합의를 대남 협박의 지렛대로 악용해 왔다"며 "문 정부 입장에서 군사합의는 굉장히 중요하다. 군사합의가 흔들리면 대북정책(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상처'가 난다고 보고 민감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문 정부가 북한의 군사도발을 도발이라 표현하지 못하는 등 임기 내 대북성과에 집착한 탓에 "북한이 툭하면 파기를 운운하며 협박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북한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020년 6월 발표한 담화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조치를 주문하며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철거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해당 담화 이후 문 정부는 '김여정 하명법'으로 일컬어지는 '전단 금지법' 추진 의사까지 밝혔지만, 북한은 기어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상호 적대행위 금지'를 골자로 하는 군사합의를 사실상 위반한 것이다. 이에 문 정부 내부에선 '합의 파기를 선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모습(자료사진) ⓒ 조선중앙통신

남측의 '온건한 대응'을 확인한 북한은 문 정부를 계속 몰아붙였다. 실제로 김 부부장은 2021년 3월 발표한 담화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강한 불쾌감을 표하며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 군사분야 합의서(군사합의)도 시원스럽게 파기해 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군사합의를 흔들어 자신들이 바라는 연합훈련 취소, 대북제재 완화 등의 요구사항을 관철하려 든 셈이다. 실제로 문 정부는 북한 입장을 적극 대변하며 미국 정부 설득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후 북한은 김 부부장을 내세워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문 정부 임기 말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쏘아 올리며 문 정부가 설정한 '레드라인'까지 찢었다. 하지만 군사합의는 끝내 파기하지 않았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이 발사되는 장면(자료사진) ⓒ노동신문
尹정부 대북 원칙론에
'강대강'으로 맞받은 北
尹대통령 '파기' 가능성 시사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예고한 윤 정부가 출범하자 북한은 강대강 기조에 따라 강하게 반발했다.


고도화하는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위해 윤 정부가 한미 연합훈련 정상화 등 억지력 강화에 나서면 북한도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는 흐름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군사합의 위반이 빈번히 발생했고, 윤 정부도 상호주의 대응에 나섬에 따라 합의가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던 북한은 지난해 12월 말, 급기야 무인기를 서울 상공에 침투시켰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이 문 정부를 향해 흔들었던 '파기 카드'를 사실상 윤 정부가 꺼내든 것이다.


북한이 '전승절(정전협정체결일)' 75주년을 맞아 지난 7월 27일 개최한 열병식에서 선보인 무인기(자료사진) ⓒ조선중앙통신

흥미로운 대목은 윤 대통령의 '경고' 이후 북한의 군사합의 위반사례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 센터장은 "북한이 지난 연말 무인기 도발을 감행한 이후, 윤 대통령이 경고를 내렸다"며 "사실 그 이후 북한이 조용하다"고 말했다.


군사합의 '백지화' 이후 취해질 '조치'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당시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 재가동으로 북한의 유감 표명을 받아냈던 만큼, 군사합의 효력정지와 관련한 첫 번째 조치도 확성기 카드가 될 거란 전망이다.


문 센터장은 "김정은 정권에게 확성기는 매우 두려운 존재"라며 "군사합의 이행중단(효력정지)을 (북한이)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고 지금 잠잠하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시 군사분계선(MDL) 교하소초에서 군장병들이 고정형 대북 심리전 확성기 시설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사진공동취재단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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