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즐겁다~ 고레에다 그 영화와 비견하는 수작 [OTT 내비게이션⑤]
입력 2023.09.12 13:48
수정 2023.09.12 13:58
한국 ‘아이들은 즐겁다’ ∽ 일본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어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다른 영화가 떠오를 때가 있다. 이 연상이라는 게 결코 호감을 키우지 않는다, 되레 기껏 형성돼 오던 만족감을 떨어뜨리기에 십상이다.
그런데 만일, 연상작용이 일어난 영화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임에도 만족감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들엔 연상작을 능가하는 면모도 있다고 느낀다면! 그야말로 새로운 ‘최애작’(최고로 아끼는 작품) 탄생의 순간이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감독 이지원, 제작 영화사 울림, 배급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2021)가 그랬다. 아무런 정보 없이, ‘그래, 아이들은 즐거워야지! 그렇게 자라야 어른도 사회도 건강하지!’, 막연한 호감으로 선택했다.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큼 즐겁고 괜스레 웃음이 나고 시간 잘 가는 일이 어디 있겠나, 해맑은 아이들 얼굴 보며 한 번 웃자는 마음도 관람 이유에 있었다.
기대 이상이다. ‘어라~’를 넘어 ‘오호!’로 치닫다가 처음에 얘기했듯 한 영화가 떠올랐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제작 기적 제작위원회, 수입·배급 ㈜미로비젼, 2011)이다.
어른들은 속속들이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 어린이 나름의 살아가는 어려움과 상처, 어른들 보기에는 다소 위험한 도전이지만 그들에게는 더없이 진지한 모험, 보는 것만으로 즐거움이 옮겨오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동심, 유달리 해맑은 눈웃음과 입가의 미소가 마음을 두드리는 주인공 소년… 많은 것들이 두 작품에 함께 녹아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된 형 코이치와 동생 류노스케의 이야기다. 엄마와 사는 코이치는 아빠랑 류노스케랑 다 함께, 우리 가족이 꼭 다시 모여 사는 게 소원인 소년이다. 새로 생긴 고속열차가, 양방향에서 오는 고속열차가 겹치며 스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바로 그곳’을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우리 가족이 함께 살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적을 위해서다.
계획은 명료했지만 부닥칠 현실은 막막한 그 대장정에 자신만의 소원을 지닌 친구들이 동행한다, 멀리에 사는 동생도 부른다. 이보다 긴장감 넘치고 이보다 졸졸 따라가고픈 여정이 없을 만큼 애가 탔다가 웃음이 났다가 한다.
‘아이들은 즐겁다’의 친구들도 제법 먼 길을 떠난다. 주인공 다이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픈 엄마는 병원에 있고, 아빠는 화물트럭 운전사로 이른 출근과 늦은 귀가, 외박이 일쑤라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혼자 있어도 받아쓰기 100점에 민호랑 유진이랑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데. 빨아도 빨아도 어쩐지 냄새나고 얼룩이 남아있는 빨래는 그렇다 쳐도, 부모님 확인 사인받아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길도 척척, 엄마를 찾아가 고픈 정도 채우고 사인도 받고, 일찌감치 애어른이 된 다이다.
다이는 엄마가 얼른 나아 집으로 돌아와 함께 살기를 소원하지만, 더 이상 혼자 잠들고 싶지 않지만, 엄마의 병세는 점점 심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사라졌다! 멀리 청주의 병원으로 옮겨간 엄마를 찾아 떠나려는 다이. 평소 자신들만의 아지트에서 같이 놀던 민호뿐 아니라 전학 간 유진이를 대신해 다이처럼 책 읽기 좋아하는 시아가 자신만만 ‘인간 내비게이션’으로 동행하고, 친하기는커녕 치거니 박거니 싸우고 놀기는커녕 학원만 다니던 반장 재경이도 다이의 엄마 찾기 여행길에 함께 나선다. 역시나 엄마에게로 가는 길은 녹록지 않고,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지며 보는 이의 애간장을 녹인다.
일본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의미나 해석을 굳이 따지지 않아도 명작이다. 그러함에도 어른이다 보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가족이 얼마나 큰 바탕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대목에서 숙연해진다.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10년 뒤에 나온 우리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아이들의 일상과 성장에 있어 친구와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스레 느끼게 한다. 아이(다이)가 있는 연인과 결혼한 다이 아빠를 통해 부부란 무엇이고, 부모와 자식을 부모와 자식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빈부에 상관없이 아이를 아이로 대하고 아끼는 다이 담임선생님도 사회적 윗사람의 공평함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아이의 자리, 어른의 자리, 우리의 바른 자리에 대해 깊은 질문을 툭 던진다.
‘어린이 배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이를 연기한 이경훈은 일찍 철이 든 아이의 묵묵함과 천진난만함을 동시에 지녔다. 시아 역의 옥예린은 선입견 없는 아이의 시선을 대변하고, 민호 역의 박예찬과 유진 역의 홍정민은 쾌활함과 씩씩함으로 즐거운 아이들의 표상을 보여 준다. 반장 역의 박시완은 아이들의 지나친 경쟁심과 의젓한 학구열이 사실은 어른들이 자신의 욕심을 이식한 것에 지나지 않고 언제든 한 꺼풀 벗기면 동심이 자리하고 있음을 일러준다. 어른 배우들이 아이처럼 연기할 수 있다면 명배우일 수 있음을 알려주듯 힘주지 않고 그 상황에 들어가 느끼고 행동한다.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의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고 좋은 작품에 함께한 어른 배우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다이 아빠 역의 윤경호, 엄마 역의 이상희, 선생님 역의 공민정은 우리 사회 어른들이 모두 저런 분들이라면 세상은 아이도 어른도 살기 좋게 한결 아름다워질 텐데 싶은 모습을 그려 보였다. 배우들의 인성이 캐릭터의 설득력을 높였다고 할 만큼 진정성 있는 연기를 펼쳤다.
다가오는 추석 명절, 평소보다는 많은 아이를 만날 수 있다. 아이가 아니라 해도 여러 손아랫사람을 만날 것이다. 어떤 어른의 모습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들과 무엇을 나눠야 할지에 관한 해답이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