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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황금세대들의 그늘 [기자수첩-스포츠]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입력 2023.08.05 07:00
수정 2023.08.05 07:00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10년 이상 한국 여자축구 지탱

대체할 선수 자원 없어 베테랑들 세 차례 월드컵 내내 ‘황금세대’ 불려

월드컵 앞두고 협회 전폭적 지원 좋았지만 새 틀 짜고 도약 구상할 때

ⓒ KFA

“강제 황금세대들 고생했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대표팀이 2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가운데 한 축구팬이 SNS에 남긴 글이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한국(피파랭킹 17위)은 지난 3일(한국시각) 호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23 호주·뉴질랜드 FIFA 여자 월드컵’ H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피파랭킹 2위’ 독일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뒀다.


지난달 25일 콜롬비아(피파랭킹 25위), 30일 모로코(피파랭킹 72위)에 의외의 완패를 당한 한국은 이날 5골 차로 독일을 잡은 뒤 16강행 티켓을 기다려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을 앞두고 있었다.


월드컵 우승 경험과 두꺼운 선수층을 자랑하는 독일을 상대로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선 한국은 위기에 빠져들수록 더 강해졌다. 혹시나 했던 기적은 역시나 일어나지 않았지만 경기 내내 투지를 불태웠다. “절대로 독일에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던 선수들은 투혼을 불사르며 귀중한 승점을 따냈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독일을 탈락시키는 ‘강렬한 무승부’로 실망했던 팬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겼다. 독일 여자축구대표팀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최초의 사건이다.


의미 있는 최종전을 치렀지만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를 그리다보면 어두운 색채를 마주하게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도 지난 10년 이상 한국 여자축구를 지탱한 지소연 등 ‘황금세대’ 멤버들을 보내야 할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세대교체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황금세대’는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을 치렀다. 한국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8.9세.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황금세대로 꼽히는 지소연(32·수원 FC) 조소현(35·토트넘) 박은선(37·서울시청) 김혜리(33·현대제철) 등 10명 이상이 서른을 훌쩍 넘었다.


반면 스페인까지 대파하고 조 1위를 차지하며 매서운 돌풍을 일으킨 ‘피파랭킹 11위’ 일본의 선수단 평균 연령은 24.8세로 32개국 가운데 네 번째로 낮다. 준우승을 차지했던 2015 월드컵 때(28세) 보다도 3살 가까이 낮아졌다. 이번 대회를 통해 월드컵에 첫 출전한 선수들은 득점왕을 다투거나 2골 이상 넣었다. 그만큼 세대교체가 잘 이뤄졌다.



ⓒKFA

평균 연령뿐만 아니라 두껍지 못한 선수층과 인프라 부족의 차이는 이번 대회 성적을 통해서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지소연과 함께 A매치 148경기 뛰며 한국 축구사상 최다 출장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조소현은 모로코전을 마친 뒤 “2015·2019년 월드컵 때도 우리는 황금세대로 불렸다”며 "기존 선수들을 밀어낼 수 있는 어린 선수들이 더 많이 있었다면 서로 경쟁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 여자축구 인프라나 전문 선수나 지원자가 많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초등학교 팀도 줄고 있고, 유소녀 전문 선수 규모도 하락세가 뚜렷하다.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존 뛰고 있던 선수들마저 떠나가면서 가뜩이나 열악한 여자축구의 저변은 더 약화되고 있다.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 자체는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지만, 전문선수로 발전할 수 있는 인원은 계속 줄고 있다.


대체할 선수 자원이 많지 않아 베테랑 선수들은 세 차례 월드컵을 치르면서 ‘강제’ 황금세대로 불려야 했다. 그런 황금세대마저 다음 대회에서는 없다. 이제야말로 그 그늘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새 틀을 짜 강한 팀으로의 도약을 구상해야 할 때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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