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남조선'·김여정 '대한민국'…北, 혼선인가 의도했나
입력 2023.07.14 06:00
수정 2023.07.14 09:43
'한반도 2국가' 고려하나 싶었는데
김정은, '민족 간 특수관계' 재확인
정부 "조금 더 볼 필요 있어"
북한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남측을 '대한민국'으로 지칭한 지 이틀 만에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조선'을 언급한 사실이 공개돼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최근 북한이 '한반도 2국가' 정책을 염두에 둔 듯한 입장을 거듭 밝혀온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민족 간 특수관계'를 상징하는 용어(남조선)을 활용해 혼선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과 김 부부장 메시지가 사실상 충돌하고 있는 만큼, 내부 조율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김 부부장의 '대한민국 언급'이 대외매체에만 실렸다는 데 주목하는 분위기다. 북한이 대외적으론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상정하는 흐름을 보이면서도 내부적으론 여전히 '민족 간 특수관계'를 고려하는 접근법을 유지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같은 맥락에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아직 어느 쪽으로 결정하는 것은 좀 조심스럽다"며 "조금 더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방북 의사에 대해 북한 외무성이 '입국을 거부한다'고 밝히는 등 북한의 대남 접근법 변화 가능성이 포착되고 있지만, 단정적 평가는 이르다는 설명이다.
남북은 '민족 간 특수관계'를 양자관계의 '기초'로 설정해, 인적교류 시 '입국' 아닌 '입경' 표현을 활용해 왔다. 이에 현 회장도 북한의 대남기구를 통해 입경 허가를 타진했지만, 북한은 외교 당국을 통해 입국 불허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간주하려 한다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권 장관은 "북한이 '삶은 소대가리'처럼 우리를 비하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창의적인 발언들을 해왔다"며 "'두 나라(국가 대 국가 관계)'를 추구하면서 반드시 '대한민국'이라고 표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지금까지의) 몇 가지 사례 말고 조금 더 진전되는 모습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 외무성의 현 회장 입국 불허 조치에 이어, 김 부부장의 대한민국 지칭 담화까지 나왔지만, 북한의 속내를 파악하기엔 이르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적관 기초한
'국가 간 관계' 부각해
대남 핵공격 '명분' 쌓나
일각에선 북한이 대남 핵공격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남북의 '국가 간 관계'를 부각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이 지난해 9월 '핵 독트린(핵무력정책법)'을 법제화하며 적대세력에 대한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남한의 적국화(敵國化)'를 통해 대남 핵공격 명분을 축적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남북관계를 기존처럼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 간 특수관계'로 한정할 경우, 핵공격 명분이 옅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적관에 기초해 '국가 차원의 남북관계'를 부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이 자꾸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남북관계를) 국가 간 관계로 정립하려는 목적은 핵무력 사용을 합법화하려는 수순"이라고 말했다.
남측 비꼬는 차원일 수도
김여정 '특수기호' 활용해
'대한민국' 지칭
북한이 남측을 비꼬기 위해 대한민국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여정이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꺾쇠'를 활용했다"며 "한국에 군사 주권이 없다는 것을 비꼬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라는 표현보다 특수기호 활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김 부부장은 지난 11일 담화에서 미군 공중정찰기의 '경제수역 상공 침범'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군부 깡패들은 주제넘게 놀지 말고 당장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군부는 또다시 미군의 도발적 행동과 관련해 중뿔나게 앞장에 나서 《〈한〉미의 정상적인 비행활동》이라는 뻔뻔스러운 주장을 펴며 우리 주권에 대한 침해 사실을 부인해 나섰다"고도 했다.
지난 10일 담화에선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 족속들의 체질적 특징 등을 언급했다.
北외무성, 현정은 '방북 거부'
의사 밝히며 '남조선' 표현 사용
박 의원은 북한 외무성이 현대아산 측의 방북을 거부하며 '남조선'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성일 외무성 국장은 지난 1일 담화에서 "남조선의 그 어떤 인사의 방문 의향에 대하여 통보받은 바 없고 알지도 못한다"며 "남조선의 그 어떤 인사의 입국도 허가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외무성이 입국을 불허하긴 했지만, 남측을 남조선이라 지칭한 것은 민족적 관점이 반영된 결과인 만큼, 북한의 대남 접근법 변화 가능성을 주시하되 "결론은 신중히 내려야 한다"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