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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크로를 막는다고요? 그들은 출발선부터 달라요” [암표와의 전쟁②]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3.06.21 11:01
수정 2023.06.21 11:01

구인구직 사이트에 버젓이 매크로 아르바이트 공고

암표 조직 총책부터 프로그램 개발자 등 역할 구분

"돈 되는 한 암표상 사라지지 않을 것...죄책감 가져야"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직장인 A씨(27세)는 취업 포털사이트에서 한 구인 광고를 보고 마우스 스크롤을 멈췄다. 큰 고생 없이, 정확히 말하면 가만히만 있어도 돈이 떨어지는 아르바이트였다. 심지어는 다른 아르바이트보다도 시간 대비 보수가 넉넉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구인 조건이었어요.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어도 돈을 준다는데…. 그때는 별다른 의심도 하지 않았어요. 세상에 이런 아르바이트가 어디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힘을 들이지 않는 일이고, 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일도 아니니까요. 돈을 못 받아도 그만이라는 마음이었던 거죠.”


채용 조건은 단순했다. 티켓 플랫폼을 이용해 본 적이 있는 사람,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손이 빠른 사람’이 조건의 전부다. 그를 비롯해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이 암표상 일당의 중간책 지시에 따라 모의 티켓팅도 진행했다. 이 일당은 매우 조직적이고, 비밀스럽게 움직였다. 사실상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고 작업과 관련한 모든 대화는 컴퓨터, 휴대전화를 통해 이뤄졌다.


통상 매크로 암표 조직들은 예매를 주도하는 총책부터 프로그램 개발자, ID 섭외자, 티켓 운반책, 자금 모집책 등 역할 구분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프로그래머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그 다음부터는 마우스 커서가 티켓 플랫폼의 로그인부터 티켓 구매까지 자동으로 클릭하는 방식이다. 온라인 사이트의 예매 화면을 하나의 좌표로 봤을 때 특정 좌석이나 예매 버튼 위치에 해당하는 X, Y값을 지정해 자동으로 마우스를 해당 값으로 옮기게 한 것이다. 예매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5초 안팎이다.


“기본적으로 아이디를 5~6개와 프로그램을 받았어요. 그 프로그램을 받으면 알아서 예매 플랫폼으로 들어가서 로그인하고, 예매까지 자동으로 작동되는 거죠. 그땐 자세히 몰랐는데 그 프로그램이 매크로였던 거예요. 당시 그들이 지목한 아이돌 그룹의 티켓팅을 했는데, 엑소와 방탄소년단 등 S급, A급 아이돌들이 그 대상이었어요. 인기 공연일수록 티켓팅에 성공했을 때 받는 보수가 올라가는 식이고요.”


이들이 말하는 티켓팅 성공, 실패는 일반 예매자들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앞자리를 잡았으면 성공, 예매에 성공했어도 앞자리 사수를 하지 못하면 실패로 간주한다. 매크로를 통해 대기 시간 없이 곧바로 진입함에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건, 그만큼 매크로를 활용한 티켓 예매자가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는 “(매크로는) 출발부터 다르다. 일반인들은 이미 매크로가 쓸어가고 남은 자리를 예매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해당 기사와 무관 ⓒ 빅히트뮤직

티켓 플랫폼들은 이 같은 매크로의 접근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매크로를 쓰더라도 보안문자 6자리를 눌러야 하도록 했는데, A씨는 매크로를 통해 티켓 예매를 하면서 단 한 차례도 보안문자를 직접 입력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깔면 그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보안문자를 인식해 입력하는데 1, 2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장애물인 셈이다.


인터파크 콘서트컨설턴트팀 강수현 매니저도 “안심예매 서비스, 보안문자 입력 단계 추가를 비롯해 예매 창 진입 후 결제까지 제한시간을 설정해 매크로의 과도한 진입과 좌석 호출을 제재하는 등의 대응을 하고 있다. 매크로는 인터파크의 오랜 숙제이자 싸워 나가야 하는 주요 타켓”이라며 “그러나 매크로를 100% 막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하다. 우리가 대응책을 마련하더라도 매크로 업체들은 계속해서 규제를 피해 가는 방안을 찾아내기 때문에 예매처 입장에서도 매우 힘들다.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과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매크로 암표상이 덜미를 잡혔다. 당시 경북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암표 판매 조직 22명을 잡아들였고, 이들 중 총책 B씨와 매크로 프로그램 개발자 C씨를 비롯한 18명을 붙잡아 이들 중 3명을 구속했다. 이 일당은 당시 3년여간 무려 7억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첫 매크로 암표상 구속 사례가 나타나면서 긴장감이 돌기도 했지만 암표상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돈이 되는 한 매크로 암표상들은 사라지지 않겠죠. 그리고 또 과거의 저와 같이 돈을 벌기 위해 혹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고요. 저 역시도 일반 아르바이트보다 급여가 좋으니까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매크로 암표상이 부당하게 수익을 챙긴 기사 등을 접하고 나서야 이게 단단히 잘못된 거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분명 나중이 되면 비양심적이었던 그 행동들을 후회할 겁니다. 지금의 제가 그런 것처럼.”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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