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터키탕! 하맘(hammam)에 가다
입력 2005.01.11 07:53
수정 2005.01.11 07:53
‘솔빛별가족’ 세계여행기(202)-터키 이스탄불(6) / 노명희
다른 여행자들로부터 하맘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무슨 목욕탕 같은 곳인데 전신 맛사지도 해준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진짜 터키탕인가보다. 우리나라에도 한때 터키탕이 있었다고 한다(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터키탕은 목욕탕이라기 보다는 퇴폐적인 업소라고 들었는데 왜 터키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터키대사관에서 강력히 항의하는 바람에 이름을 바꿨다고 들었다. 어쨌든 터키의 터키탕은 우리나라의 옛날 터키탕은 분명히 아니다. 이곳의 하맘이라는 것이 바로 터키의 터키탕이다.
터키에 오면 많은 여행자들이 하맘을 찾는다고 한다. 터키탕이라는 이름이 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지 궁금했다. 분명히 그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다. 막상 가보면 실망스럽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왜 실망스러운지 확인해보고 싶다. 또 얼마만에 가보는 목욕탕인가 싶기도 하고…
이스탄불 구시가 중심지에 있는 하맘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나를 헷갈리게 했다. 굴뚝에서 희뿌연 김이라도 뿜어대는 목욕탕 건물을 상상했다가 입구를 못 찾아 한참을 헤맨 후 다시 쳐다보니 하맘 지붕이 무슨 웬만한 사원의 모스크처럼 생겼다. 500여년 전부터 지금껏 하맘을 하고 있다니 그 역사가 참 대단한 목욕탕이다. 안내에서 표를 샀는데 터키 물가로 치면 좀 비싸다. 일인당 15달러인데 맛사지비까지 포함되어 있다. 내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따로 3달러쯤 팁을 쥐어주면 맛사지의 질이 달라진다고 들었기에 으레껏 그러나 싶어서 안내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팁까지 포함된 가격이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서 어리둥절해 서 있으니 어떤 여인이 와서는 큰 타올 하나를 주며 옷을 벗고 저쪽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혹시 몰라서 수영복을 챙겨 갔으나 생각해보니 입을 이유가 없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물으니 역시 입지 말라고 한다). 목욕탕 안은 동그랗게 생긴 넓은 홀 같았다. 한 가운데로는 대리석 같은 둥그런 원형 돌침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10여명이 누울 수 있는 정도로 큰 돌침대가 놓여져 있고 그 옆으로는 벽쪽으로 뺑돌아가며 샤워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자그마한 공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돌침대 위에는 사람들 대여섯 명이 줄줄이 누워 있다. 맛사지사 몇 명도 한데 모여 있다.
처음보다 더 어리둥절해져서 어찌할 바를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욕탕이 따로 없다는 말은 듣고 왔으나 아무리 그러기로서니 진짜로 조그마한 욕조 하나도 없는 것이다. 샤워라도 해야 하나 하고 샤워기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가는데 어떤 풍만한 몸체의 맛사지사가 느릿하게 다가오며 하는 첫 마디!
“Come on!”
갑자기 ‘넷!’ 하는 마음이 되어 속으로 긴장하며 그 앞으로 가니 손에 있던 수건을 달래면서 자기 앞으로 좍 펼쳐놓는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까딱 하며 누우라는 제스쳐를 보낸다. 내 참! 그러나 하라는 대로 했다. 돌침대는 우리나라 찜질방과는 비교가 안되게 바닥이 미지근하다. 샤워를 안 했다고 했더니 노 프러블럼이란다. 그러더니 드디어 터키식 맛사지가 시작이 되었다.
제일 먼저 무슨 비누거품을 넣어논 듯한 긴 통 안에 웬 얄팍한 하얀 보자기를 쑥 집어넣는가 싶더니 꺼내자마자 내 몸에 대고 주루룩 짜댄다. 그 순간 갑자기 내 몸은 엄청난 하이얀 거품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너무 순식간이라서 깜짝 놀랐다. 욕조 속에서 가득한 하얀 거품을 손으로 후 불며 여유롭게 목욕을 즐기는 아리따운 여자의 모습을 TV속 광고 같은 데서 본 것도 같은데 나는 이렇게 벌겋게 누워 한 순간에 거품 안에 푹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샤워를 안 해도 된다고 했는지 원! 어쨌든 1차 관문이 끝나고 다음 순서는 이제 본격적인 맛사지인데 그나마 맛사지 전에 때를 민다고 밀어주는 게 어찌나 간지러운지 정말 내가 뺏어서 밀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그것은 맛사지도 마찬가지였다. 두어 차례 예의 그 비누거품만 뒤집어쓰게 해주고는 맛사지라는 것은 거의 흉내만 내는 정도였다. 20여분 만에 다 끝내고는 돌침대에 누워서 얼마든지 쉬라고 한다. 그렇게 할려면 하루에 100명을 해도 힘이 안 들 것같다.
그래서 그러나? 맛사지사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노래를 흥얼거린다. 우리나라의 민요가락 같기도 한 구수한 정감있는 노래를 시종일관 불러대는데 아무리 봐도 이 여인은 맛사지보다는 노래를 더 잘한다. 중동지역의 노래가락은 듣고 있으면 참 묘한 느낌이 난다. 우리나라의 창하고도 닮았는데 애조 띄는 선율에 잘게 부서지는 빠른 리듬이 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신비스런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하게 한다. 소리의 공명이 너무도 은은하여 맛사지를 받다말고 여기가 과연 터키로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이 든 또하나는 돌침대 위에 누워서 쳐다보는 천장의 아름다움이었다. 지붕이 돔형태로 되어 있는데 그 꼭대기는 아득하게 높게 보인다. 그런데 천정 한가운데를 유리로 만들어놓아 돌침대쪽으로만 일직선으로 햇빛이 비춰지는 것이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왔을 때 웬지 모를 분위기에 압도된 듯 했는데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었나 보다. 어슴프레한 실내 조명에 한가운데로만 쏟아지는 은은한 자연 채광이 묘한 신비로움을 줬던 것 같다. 여느 잘 지어진 현대식 목욕탕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목욕탕 곳곳에 로마풍을 연상시키는 오랜 역사를 느끼게 하는 손잡이나 조각상들도 거기에 한몫 했다. 이 하맘은 구조 자체가 소수의 인원으로 제한될 것 같다. 일단 돌침대만 해도 많으면 20여명 정도나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오랜 옛날부터 어떻게 지금까지 하맘을 유지해 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목욕비가 결코 비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이곳의 사람들은 이런 미지근한 돌침대와 하얀 비누거품 속에서 은은한 목욕을 즐겼나 보다. 질좋은 우리 식의 화끈한 싸우나나 맛사지를 따지기 이전에 터키 스타일의 독특한 하맘을 보고 느끼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