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닥터 차정숙, 남편이 망가지면 뜬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3.05.20 07:07
수정 2023.05.20 07:07

ⓒJTBC

JTBC 주말극 ‘닥터 차정숙’이 시청률 18.9%(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TV와 OTT 통합 드라마 화제성에선 2주 연속 1위다.


주인공의 남편이 점차 천덕꾸러기가 되어갈 조짐이 보이면서 시청률과 화제성이 뛰었다. 주부 대상 히트 드라마의 기본 공식 중의 하나다. 남편이 망가지면 작품이 뜬다.


여기서 망가지는 남편은 보통 가부장적이고, 부인을 무시하며, 심지어 외도까지 하는 남편이다. 거기에 더해 시댁도 며느리와 며느리의 집안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시댁이 무너지는 것도 ‘꿀잼’ 포인트다.


이런 공식이 생생한 연기와 탁월한 극본, 연출로 구현됐을 때 드라마가 뜨곤 했다. ‘닥터 차정숙’이 딱 그런 구도를 보여준다.


극중에서 차정숙은 의대를 나와 인턴까지 했지만 아이를 낳은 후 집안살림만 한 경단녀다. 남편은 대학병원 교수로 부인을 철저히 무시하며 같은 대학병원의 여성 교수와 바람을 핀다. 까탈스러운 시어머니는 빌딩 소유주로 상류층 의식에 쩔어 차정숙과 그 집안을 무시한다. 거의 도식적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전형적인 설정이다.


이런 설정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공감하는 이가 많다는 뜻이다. 특히 결혼 후 남편과 시댁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경력이 단절돼 사회적으로 무력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 그런 여성들이 이런 설정에 즉각 공감하면서 감정이입하는 것이다.


현실에선 이런 상황을 뒤집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드라마라면 가능하다. 한 순간에 인생역전 수준으로 상황을 일변시켜 답답함을 느끼던 시청자에게 사이다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닥터 차정숙’에선 집안에서 살림만 하던 차정숙이 갑자기 남편이 다니는 대학병원의 전공의가 된다는 설정으로 상황을 뒤집었다.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현실적이지 않을수록 대리만족의 후련함이 크다.


주인공이 단지 전공의가 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꽃미남까지 등장한다. 연하의 잘 생기고 키도 크며 미국 의대를 나온 대학병원 의사가 차정숙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연하남이 등장하는 것도 주부 판타지 드라마의 공식 중 하나다.


주인공이 비상하는 가운데 남편과 시댁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기세등등하게 부인을 무시하던 남편은 이제 서서히 부인에게 매달리는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부인에게서 냉대 당하고 내연녀에게도 버림받는 천덕꾸러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빌딩으로 유세하던 시어머니는 빌딩을 사기 당해 잃고 며느리에게 매달리는 처지가 될 것 같다. 남편과 남편 집안이 망가질수록 작품의 시청률은 우상향할 것이다.


차정숙이 마지막에 가정을 완전히 떠날 것인지 아니면 고쳐 쓸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소극적이고 눈치만 보며 무시당했던 주인공이 대학병원 교수로 사회적 지위를 구축하면서 주도적이고 당당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 자체에 여성 시청자들의 지지가 쏟아질 것이다.


이런 설정이 매우 뻔하기는 하지만 이걸 기계적으로 적용한다고 무조건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연기력, 대본, 연출 등 완성도가 받쳐줘야 설정의 힘이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닥터 차정숙’은 그렇게 설정이 위력을 발휘할 정도로 완성도가 충분히 높다. 그래서 지금처럼 뜬 것이다.


이런 유형의 드라마가 표현이 너무 강하고 내적 개연성이 떨어지면 막장 드라마라 불린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웰메이드 드라마라고까지 불리기도 한다. ‘닥터 차정숙’은 막장보다는 웰메이드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그래서 ‘닥터 차정숙’은 재미있다.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는 막장 드라마와 달리 깔끔하게 재밌다는 것이 미덕이다.


다만, 이렇게 뻔한 설정이 반복적으로 제작되고 성공을 이어가는 건 환영할 일만은 아니다. 이런 작품을 재밌게 보노라면 자괴감이 느껴지기까지 않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우리나라 주부들이 오죽 억압되고 한이 맺혔으면 이런 작품에 끝없이 감정이입하겠는가?’라는 부분도 있다. 여성들 특히 주부들의 한이 이어지는 한, 그 한을 대리만족을 통해서라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작품들의 성공시대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