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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딸 눈치보는' 민주당 초선들…사라진 소신 정치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입력 2023.05.21 09:00 수정 2023.05.22 13:10

"당내 민주주의 약화됐다"…초선 목소리 실종됐단 지적

'코인 논란' 김남국 엄호해 비판 커져…처럼회 해체론도

강성 지지층 공격에 당 주류와 엇갈린 행보 자중 분위기

'천신정'·'조금박해' 등 초선 혁신 주도했던 과거와 대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쇄신 의원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코인) 거래 및 보유 논란으로 위기에 처한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내 민주주의가 굉장히 약화됐다", "초선 의원들의 목소리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전체 의석(167명) 중 절반에 가까운 80명이 초선이지만, 이들이 대부분이 당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성 지지자들의 영향력 강화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정치적 환경이 초선들의 역동성을 사라지게 만든 배경으로 꼽힌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자를 통칭하는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들의 집중 공격을 받는 초선 의원은 손에 꼽는다. 그만큼 초선 의원들이 강성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는 이재명 대표 '방탄'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코인 논란에 휩싸인 김남국 의원을 유독 엄호한 것도 초선 의원들이었다.


김용민 의원은 코인 논란이 제기된 후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서민으로 남길 바라는 당이 아니다"라며 김남국 의원을 감쌌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한 라디오방송에서 "가진 것은 죄가 안 되는데 검소하게 사는 것은 죄가 되느냐"라고 말했다.


심지어 양이원영 의원은 의총에서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 우리 당은 너무 도덕주의가 강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도덕성을 내려놓자'는 식으로 비쳐져 논란이 커지자 양이 의원은 전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도덕적 우위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치 능력의 우월성을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2021년 12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선 승리 방안과 초선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2022년 대선승리 위한 더민초(더불어민주당 초선모임) 워크샵에 참석한 윤호중(앞줄 왼쪽 여섯번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더민초 의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초선들의 이같은 행위 때문에 당내 강경파 초선 모임 '처럼회' 해체론이 다시 분출하고 있다. 박지현 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한 라디오방송에서 "강성 지지층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움직이는 '처럼회',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유튜버들이 민주당의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 안팎에서는 초선들이 총선을 앞두고 더욱 강성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가 당권을 잡기 전부터 '당원민주주의 확대'를 강조해 오면서 그의 강성 지지자인 '개딸'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 주류와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건 향후 정치 행보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조응천 의원은 "이재명 대표 체제가 되고 난 이후에 우리 당내 민주주의가 굉장히 약화됐다는 생각이 많다"며 "이견을 이야기하면 '수박'이라고 그러고 짓누르려고 하고 극성 유튜버, 무당 유튜버들이 그걸 정말 과장하거나 극대화한 영상을 송출을 하고 그러면 그걸 받아가지고 강성 지지층들이 공격을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도부는 이걸 방치하고 제대로 손을 안 본다. 거기에 지금 손혜원 전 의원이나 이런 분들이 또 옆에서 가세를 한다"며 "우리 강성 당원들은 좀 도가 지나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개딸'들은 김남국 의원을 엄호하면서, 김 의원은 물론 당 지도부의 늑장 대응을 지적한 의원들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개딸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의원들은 이상민·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 등으로, 당내 대표적인 비명계다. 개딸들은 "그냥 당을 나가라" "수박들을 처단하라"며 '문자 폭탄'과 같은 공격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개딸 눈치 보여서 초선 의원들이 뭘 얘기할 수가 없는 분위기"라며 "'처럼회'처럼 주류 노선을 타는 것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공천도 위태로운데 누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겠나"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장파로 분류됐던 '조금박해' 조응천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박용진 의원, 김해영 전 의원 ⓒ데일리안

이는 과거 민주당 내 초선 의원들이 주축이 돼 혁신을 주도했던 모습과 대조된다는 지적이다. 2000년 이른바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은 정풍운동을 주도해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기득권이었던 동교동계 원로의 2선 후퇴를 이끌었다. 이들은 2003년 참여정부 출범과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 꼽힌다.


가깝게는 20대 국회에서는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가 당내 소장파로 분류됐다. 이들은 민주당 내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주도했다. '조금박해'는 '조국 사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두고 당 주류와 대치했다. 조응천·박용진 의원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국회 재입성에 실패, 당적과 상황이 달라지면서 완전체로서 목소리를 내는 상황은 더는 연출되지 않았다.


물론 초선 의원들이 앞다퉈 전면에 나서면서 되레 당의 혼란을 초래한 적도 있긴 하다. 17대 국회 때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 108명의 초선 의원들이 '108번뇌'라 불릴 만큼 전면에 나서는 바람에 분열했다.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는 21대 국회 시작 전 180명 당선자 전원에게 '108번뇌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고영인 의원은 2년여 전 "과거 열린우리당 초선들이 보였던 모습에는 분열적 요소가 있었던 걸 반면교사 삼아 자중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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