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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㊸] 길복순이라는 물 만난 활어, 구교환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3.04.16 07:01 수정 2023.04.19 16:38

완성형임에도 날것의 생생함을 잊지 않은 연기

작품을 이어가며 살고 있는 인물 ‘구교환 씨’와의 재회

배우 구교환 ⓒ넷플릭스 제공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사실 배우 구교환을 독립영화 시절부터 아끼는 시네필(영화애호가)들이 많다. 필자만 그랬던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가 상업영화, 대중영화 시장으로 진출하기를 응원했다. 마치 숨겨둔 내 남자친구를 공개하고, ‘우리나라에 이런 배우도 있거든, 나만 알고 싶었지만 공유할게’라는 자부심을 미리 품었다.


드디어 영화 ‘반도’ ‘모가디슈’ 등을 통해 관객 대중에게 배우 구교환의 존재가 알려졌다. ‘반도’가 공개된 후 주변에서 “와, 서 대위 역 배우, 연기 너무 잘하더라” 칭찬이 들려왔다. ‘모가디슈’를 보고는 더했다. “태준기 참사관 마지막 장면, 진짜 강렬하더라. 구교환 진짜 대단해” 극찬이 자자했다.


영화 '모가디슈' 태준기 참사관 역의 구교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런데 무슨 심통도 아니고, 누구보다 크게 칭송해야 할 ‘짝사랑’ 필자는 큰물로 나온 구교환의 연기가 성에 차지 않았다. ‘이 정도 아니잖아, 왜 그 작은 영화들에서도 흘러넘치게 뿜어내던 매력을 못 보여 주는 거야’ ‘여러분, 아직 흥분하지 마세요, 이 배우 이게 다가 아닌 배우예요, 칭찬은 이릅니다’, 배우 구교환을 향한 기대를 더 키워 주길 바랐다.


드라마 ‘킹덤: 아신전’에서는 짧은 출연이 아쉬웠고, 드라마 ‘괴이’는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서 배우가 소모된 것만 같아 속상했다.


그래도, 당연히, 한 번 품은 애정은 쉽게 사그라지기 어렵다. 게다가 상업영화로 진출하고도 이옥섭 감독 등과 계속된 독립영화 작업을 이어가고, 감독작을 내놓기도 하며 여전한 영화에 대한 열정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과시해 주니 짝사랑이 지속될 수밖에. 드라마 ‘D.P.’도 있었고 말이다.


영화 '길복순'에서 킬러 한희성으로 분한 배우 구교환 ⓒ넷플릭스 제공

드디어! 뭔가 가슴에 맺혀 있던 아쉬움이 말끔히 사라지는 연기를 보았다. 영화 ‘길복순’에서다. 배우 구교환은 길복순이라는 물에서 자유로이 헤엄쳤다. 특유의 날것, 특유의 탱탱함, 특유의 독특함을 맘껏 발산했다. 까탈스럽게, 눈을 이마에 붙인 잣대로 배우 구교환의 최근 연기에 만족을 몰랐던 필자를 흡족하게 하는 연기였다. 필자의 눈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다, 웬만해선 칭찬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대를 제압하는 호연이었다는 것이다.


연기력에 관한 한 토가 달리지 않는 두 배우 전도연과 설경구가 주연을 맡은 영화에서 이뤄낸 성취라 더욱 좋다. 특히 타이틀롤 길복순 역의 전도연과 대등한 호흡을 보여야 하는 킬러 한희성이었고, 업무적 선후배로서뿐 아니라 남녀관계의 서사도 있는 인물인데. 쪽 빠진 유선형의 물고기가 매끄럽게 물결을 타고, 어느 순간엔 수면 위로 쑥 튀어 올라 무용수가 공중 동작을 하듯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겨울잠'에서 구병으로 등장한 구교환. 낯선 할배 조송(문창길 분)이 자신을 자꾸 아들이라 부르고 이웃들에게도 아들이라 소개하는 상황에 처한 구병의 모습 ⓒ출처=네이버 영화 포토

배우 구교환의 ‘날것’을 조금 더 설명하고 싶다.


이루 제목을 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저예산영화 작품들에서 구교환은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다. 흔히 독립영화들 속 여러 배우가 그러하듯 메이저리그에 서기 전 아마추어로서, 연습 무대 삼아 출연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미 완성형이었다. 특히나, 그냥 ‘잘한다’가 아니라 개성이 확실했다.


마치 누군가의 일상에, 실생활에 카메라를 들여놓았고 나는 그 안에서 그를 만나는 느낌을 주었다. 꾸미지 않아도 계획하고 꾸민 어느 연기보다 독특하고, 작품마다 새로운 연기를 선보인다기보다 마치 ‘이게 나야!’라고 자신감 있게 구교환으로서 인물의 옷을 입는 느낌이었다. 그러한 특성은 영화 하나를 보면 바로 다른 출연작을 찾아보게 하는 마력을 뿜었다. 새로운 영화를 볼 때마다 구교환 씨 일상의 다른 날, 머릿속의 또 다른 측면을 보는 기쁨을 주었다.


한희성(구교환 분)의 애잔한 마음이 누수없이 관객의 마음으로 직행, 여운을 남긴다 ⓒ

이미 완성형임에도 생생한 ‘날것’의 탄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연기를 ‘길복순’에서 다시 보았다. 스크린 속에 사는 인물, 구교환 씨. 언뜻 차가워 보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하고, 실리에 의한 행동 같지만 실은 진심이고, 자기주장 잘할 것 같아도 실제론 주저하는 그 구교환 씨가 차민규(설경구 분)가 대표로 있는 MK ENT에 취직한 나날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좋은 연기는 여운을 남긴다. 관객이 혼자인 순간, 혼자만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한의성은 길복순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거야. 길복순이 선을 그으니, 차민규도 감히 연심을 드러내지 못하게 차단할 줄 아는 길복순인데 어찌 진심을 드러낼 수 있었겠어. 아, 조직의 룰을 어긴 잘못으로, 내가 죽지 않으려면 조직에 충성심을 확인받으려면 칼을 겨눌 수밖에 없었겠지, 그 심정은 어땠을까. 진심을 오해받는다는 것,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해받는다는 것,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애잔함이 밀려온다.


배우 구교환, 작품들 속에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구교환 씨의 다음 행보를 기다리는 오늘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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