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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의 우리말 생각 ‘이치개’


입력 2008.08.1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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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나라, 박정희>박목월 등 만나 정서 교류

8.15 기일 맞아 정한의 벗님들 모여 그리움 나눠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딸 옆을 지나가던 어머니가 걸음을 멈춘다. ‘묘지’라는 노랫말이 귀에 거슬렸다.

“그렇게 하지 말고 ‘태양은 대지 위에’로 바꿔 부르는 게 좋겠다.”

어머니는 자기 생각을 딸에게 말해 주었다.

이 어머니가 육영수이고 딸은 박근영이다. 둘쨋딸 박근영이 전하는 <아침이슬> 노래에 얽힌 일화 한토막이다.

<아침이슬>은 당시 금지곡이었지만, 청와대에서까지 불려질 만큼 심의기관에서 방송을 금지시킨 이런 노래를 누구나 즐겨 부르는 데는 아무런 부자유가 없었다.

노랫말의 ‘묘지’나 그것을 갈음한 ‘대지’는 평범한 말들이다. ‘묘지’보다는 ‘대지’가 부드럽고 낫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었을 테지만, 그러나 그 순간적인 전환의 발상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묘지’가 생명이 없는 어둠의 폐쇄 공간이라면 ‘대지’는 크고 넓은 생명의 땅이다. 이를테면 이미지의 대전환이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나타낼 뿐 아니라 인품과 교양이 들어 있는 문화코드이다.
큰딸 박근혜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어머니 육영수는 자녀들이 할머니에게 “야단맞았다”라거나 할머니가 “야단치셨다”라는 말도 마뜩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야단치셨다”가 아니라 “걱정하셨다”라고 해야 법도에 맞는다는 것이다.

그런 육영수에게 귀 거슬리는 말 중의 하나가 ‘이쑤시개’였다. 잇새를 쑤신다는 것이 너무 거칠어 한글학회에 전화를 걸어 ‘이쑤시개’보다 좋은 말이 없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때 답변에 나선 한글학회 이사장 최현배는 ‘이치개’라는 말을 생각해냈다. 머리빗의 빗살 틈에 낀 때를 빼내는 ‘빗치개’에 잇대어 생각을 한 것이다. 지난날에는 얼레빗, 참빗, 빗솔과 더불어 반드시 빗치개를 넣어두는 빗접이 여인네들의 필수품이었다. 빗에 끼인 때를 빼내는 것을 ‘빗쑤시개’라 하지 않고 ‘빗치개’라고 하듯이 잇새를 깨끗이 하는 모양새나 쓰임새로 보아도 ‘이쑤시개’보다는 ‘이치개’가 걸맞다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말은 대중에게 널리 쓰여야 하는데 아직 ‘이치개’는 ‘이쑤시개’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한글학회 곳간에서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어쨌거나 묘지→대지, 야단→걱정, 이쑤시개→이치개로 바꾸어지는 육영수의 우리말 생각들이 질박한 태깔을 보여주고 있다.

1969년 1월25일 한국문인협회 시화전을 참관한 육영수 여사. 위 사진의 우측, 아래 사진의 좌측이 박목월 시인.

대통령 부인 육영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만나 유익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끊임없이 탁마(琢磨)했다. 육영수의 우리말 생각은 꾸준히 갈고 닦아온 마음의 텃밭에서 피어난 꽃이라 할 수 있다.

육영수과 가까웠던 문화계 인사로 시인 박목월이 있다. 육영수는 박목월에게서 문화예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비 출판이 어려운 시인들의 시집 출판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 인연으로 박목월은 육영수의 전기도 썼다.

그 시절 청와대와 밀착했다고 해서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문단 일각에 남아 있다. 그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모 시인의 경우 정치사회적으로 목소리는 큰데, 널리 알려진 애송시 한편이 없고 대중은 그의 대표작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문학 외적으로 유명한 것이다.

굳이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하고 소리내지 않아도 박목월의 시는 김소월의 앞강물을 이어가는 뒷강물로 긴 세월을 흘러가게 되어 있다. 문학의 생명은 대중의 사랑이다. 끊임없이 대를 이어가는 사랑이다. 박목월에 대한 일부의 비판은 한때의 풍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로 어린 시절의 꿈을 키워준 동요의 노랫말을 쓴 박영종이 박목월의 본명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티없이 맑은 생각이 바르고 고운 말을 낳는다.
한글학회 곳간에 갈무리해둔 ‘이치개’라는 말도 육영수의 알뜰한 우리말 생각을 헤아리게 한다.

생각은 마음에 샘솟는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이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의 ‘오빠 생각’은 그리움이고, ‘임 생각’은 사랑이다.

육영수는 박목월의 시문학에 깔려 있는 정한(情恨)의 황톳길을 동행한 길벗으로 보아도 좋을 듯싶다. 그에게는 가지가지 사연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로부터 한센병 환우, 휠체어 장애우들까지 정한의 벗님들이 유별나게 많고도 많다.

육영수의 기일인 8월 15일에는 전국 곳곳의 사람들이 현충원에 모인다. 많은 사람들이 육영수를 생각하는 날이다. 생각은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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