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자란다" 박지원 냉소 부메랑으로…野의 '내로남불' 삭발 투쟁
입력 2023.04.04 00:00
수정 2023.04.04 00:00
4년 전 한국당에 "약자 코스프레" "정치쇼" 비판한 민주당
'후쿠시마 논란' 이어 '양곡관리법 거부권'에 릴레이 삭발
3일 국회 본청 앞에서전국의 농민, 농업인단체들과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가 주최한 쌀값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신정훈(왼쪽 세번째), 이원택(왼쪽 네번째) 의원 등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결사반대와 양곡관리법 개정안 즉각 공포'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치쇼를 강행할 때가 아니다". 3년여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릴레이 삭발 투쟁'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비판이 '부메랑'이 돼 민주당을 직격하고 있다. 제1야당의 대여 투쟁 방식을 '일제강점기 잔재' 등으로 비하하며 "약자 코스프레를 멈추라"고 했던 민주당이 입장이 바뀐 지금 대여 삭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은 3일 오후 국회본청 앞 계단에서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유력시되자, 법안 공포 압박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의 이날 대여 공세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신정훈·이원택 의원의 삭발 투쟁으로 정점을 찍었다. 삭발에는 농민 4명도 동참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윤 대통령은 내일(4일) 국무회의에서 쌀값 정상화법을 즉각 공포하라"며 "기어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식량 안보를 지키기 위해 윤석열정부에 단호히 맞서 싸워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4일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용산 대통령실 앞을 찾아 항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윤 대통령이 첫 번째 거부권을 끝내 행사하겠다고 한다"며 "거부권이 농민 생존권과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를 막기 위한 것이라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입장도 충분히 고려했고, 각계각층 의견도 수렴했다. 국회의장 중재안도 반영했다"며 "그런데 이런 대승적 차원의 조정안을 오로지 '답정너' 거부권을 들이밀며 농민을 겁박하고 야당과 대결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삭발 투쟁은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앞서 지난달 30일 농해수위 소속이자 민주당 해양수산특위 위원장인 윤재갑 의원도 같은 장소에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에 반대하며 삭발을 감행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9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파면 촉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그러나 민주당은 2019년 9월 문재인정권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을 이어간 자유한국당을 힐난한 바 있다. 삭발은 사회적 약자의 저항 수단인데 기득권인 정치인들, 110석의 제1야당이 삭발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게 당시 민주당의 주장이었다.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던 박광온 의원은 "우리 사회의 숨은 약자들의 절규와 수많은 단식에 참으로 무관심했던 자유한국당이 삭발 릴레이를 하고 있다"며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관심을 극대화하려는 삭발 릴레이가 냉소를 극대화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꼬집었다.
당시 이수진 최고위원도 "삭발은 가진 것 하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최후에 선택하는 방법인데 우리 사회 기득권인 자유한국당의 당대표가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2020년 총선 공천을 의식한 삭발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특히 박홍근 원내대표는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억울한 약자들의 투쟁방식(삭발·혈서·단식·농성·점거 등)을 강자로서 마음껏 세상을 주물러온 이가 즐기듯 따라하고 있다"며 "참 억지스럽다. 삭발 말고 민생을 챙기자. 제발"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에서 "삭발은 일본문화, 일제강점기 잔재"(민병두 전 의원), "삭발버스터"(이종걸 전 의원) 등의 비판도 나왔다.
야권 원로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같은해 여야 4당의 선거법·공수처법·검경 수사권 조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발하며 삭발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첫째 의원직 사퇴, 둘째 삭발, 셋째 단식"이라며 "사퇴한 의원은 없고 머리는 자라고, 굶어죽은 사람이 없다. 20세기 구석기 시대 투쟁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국민의힘, 민주당 삭발 투쟁 확산 조짐에 냉소
태영호 "'이재명 하명' 구시대적 투쟁 멈춰야"
윤희석 "대통령 권한 거부하는 정치적 협박"
3월 30일 국회본청 앞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강행,수산물 수입 재개 강요 규탄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에서 윤재갑 의원이 삭발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민주당으로 다시 간 박지원 전 원장의 말을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다"며 "삭발해봐야 머리는 다시 길 거고, 단식해서 죽은 사람은 없다"고 적었다.
태영호 최고위원은 "문재인정부부터 이어진 각종 퍼주기 정책에 국민적 여론이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이재명 대표가 '강행하라' 하명하니 어쩔 수 없이 삭발하는 의원들 머리만 수난을 겪고 있다"며 "민주당은 '이재명 하명'을 위한 구시대적 투쟁을 멈추고 국민과 미래세대를 위한 정상 정치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같은당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곡관리법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좋지 않으니까 동력을 갖기 위해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그 퍼포먼스가 절대 성공 못한다는 거 확신한다"고 말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농민 생존권을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거부권 걱정 없던 문재인정부 5년 동안에는 왜 양곡관리법을 추진하지 않았나"라며 "민주당 의원들의 삭발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정치적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