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과 그의 제자들
입력 2023.04.03 07:07
수정 2023.04.04 11:01
질문 기자 노려보며 “후레자식”
이번엔 검사더러 “무능한 놈들”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인상 가운데서도 특징적인 것은 ‘필요 이상의 어른 행세’다. 지금은 71세가 되었으니 굳이 노인티를 내겠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훨씬 오래전부터 그런 모습을 보여 왔다. 7선 의원인데다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실세 총리를 지낸 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까지 역임했으니 그 엄청난 관(冠)의 무게를 지탱하려면 목의 힘이 남다를 수밖에 없긴 하겠다.
질문 기자 노려보며 “후레자식”
2004년 10월 18일 이른바 ‘실세 총리’였던 그는 독일 베를린에서 특파원들과 만찬 간담회를 가졌다.
“조선과 동아가 우리를 집권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세웠는데 그것을 내가 막아냈다”(경향신문, 2004. 10. 20).
“조선·동아는 내 손아귀에서 논다. 나는 조선과 동아의 비판을 왼손으로 쳐내면서, 보수 언론의 논리를 왼손으로 격파하면서 앞으로 간다”(위의 기사).
이른바 조·중·동 가운데 중앙일보에 대한 평가는 아주 후했다. 당시의 청와대‧중앙일보 사이의 우호적 분위기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정책 사안에 따라 비판을 하는 등 객관적으로 돌아섰다”(위의 기사).
완장 자랑이 ‘똠방각하’ 수준이었다. 기자들을 상대로 ‘내 손아귀’의 힘을 과시한 것이다. 그는 폭탄주를 곁들인 간담회에서 기자들을 위협하는 말을 길게 쏟아냈다. 당시의 언론보도 내용을 보면 아주 기고만장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까지 안 됐으니 망정이지….
그의 교만에서 비롯되는 무례가 다시 극적으로 노출된 순간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 조문 직후였다(2020. 7. 10). 그는 고인에 대한 의혹과 관련, 당 차원의 대응 계획이 있느냐고 묻는 기자를 노려보다가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했다. 기자의 질문과 그의 답변은 국민에게 보도될 기사의 내용이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국민이 다 들으라고 한 말이다. 아무리 ‘큰 어른’이라도 그런 표현을 입에 올려선 안 된다. 더욱이 그는 그렇게 유세를 떨 나이도 아니었다(그 기자 부모님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이번엔 검사더러 “무능한 놈들”
이건 단적인 예일 뿐 그의 교만은 호가 나 있다. 말을 할 때도 어른티를 내려고, 흔한 말로 ‘목에 힘을 주는’ 빛이 역력하다. 그가 지난달 31일 ‘이기는 민주당, Again 강원편’ 행사에서 ‘대한민국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의 특강을 통해 습관처럼 ‘무례 화법’을 자랑했다.
그는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 “담금질을 당하고 있다. 수많은 담금질을 거쳐야 명검이 만들어진다”라고 한껏 추어올렸다. 명검이 될지, 흉기로 낙인찍힐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후배 당 대표를 격려하는 것까지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어진 표현이 참으로 고약하다.
“(압수수색을) 300번을 해도 못 찾으면 증거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오지 않나. 가짜 증거를 만들려고 하는 거다. 아주 무능한 놈들이거나 증거를 조작하거나 둘 중 하나다”(조선일보, 4. 1).
그는 검사들을 ‘무능한 놈들’로 매도했다. 대한민국의 공직자들을 가리켜 ‘놈들’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개인 간의 대화에서도 피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공적이고 공개적인 연설에서 그렇게 규정했다. 아무런 관직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 검찰 수사로 곤욕을 치른 서민이 그런다면 또 모르겠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던 젊은 시절 이후로는 고관 요직만 골라서 차지했던 그가 국가공직자를 ‘놈들’이라고 부르는 데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교만도 유분수지.
“1년 만에 나라가 어떻게 이 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근본적인 원인은 윤석열 정부에게도 있지만 우리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니까 이 꼴을 당하고 있다. 다시는 선거에서 져서는 안 된다”(위의 기사).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적폐청산’한다며 직전 정권과 그 전 정권을 짓이겼다. 일본과 일전불사할 기세로 현직 대통령(당시)이 이순신 장군의 배 열두 척까지 끌어와 ‘전남도민’의 애국심에 불을 지르고, 그의 총신은 ‘죽창가’로 추임새를 넣었다. 동학농민운동을 탄압하던 관군과 일군(日軍)에 죽창으로 맞섰던 그곳 민심을 불러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북한과 중국의 통치자들에게는 과공의 자세로 일관해 국민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안보 불안의 상시화를 초래했다. 5년 동안에 나라 꼴을 철저히 망가뜨려 놓은 것이다. 엄청난 국회의석을 가지고도 민주당이 재집권에 성공하지 못한 까닭을 이 상임고문은 정말 모른다는 것일까?
특히 정치적으로 우리는 ‘무례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민주당의 ‘막무가내 정치’의 책임 몫이 결코 작지 않다. 몇 차례나 집권 경험을 가진 정당이 정권을 잃자 이성까지도 잃은 인상을 준다. 보스 한 사람을 주군처럼 모시면서 민주 의회정치의 본령(本領: 일의 근본이 되는 주요한 점)에서 멀찍이 벗어나 버렸다. 자유민주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입법권을 주군과 동아리의 안전 확보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온갖 희한한 발상과 목적으로 법을 만들거나 바꾸는 행위를 겁도 없이 거듭한다. 그러면서도 군중심리에 마취되어 되레 큰소리를 질러댄다. 그 배경에 있는 것이 이 고문 유(類)의 교만과 집단이기주의다.
헌법상의 대통령 권한과 위상을 제한하면서 국회(다수 정당)의 간섭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뜻하는 말)격 법률 제‧개정안들을 릴레이로 쏟아낸다. 마치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 행태다. “저러다 다시 집권할 경우는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한다. 절대로 집권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때는 또 법을 바꾸면 되지’라는 심보로?
이 고문과 그의 제자들로 보이는 민주당 주요 인사들의 하루살이 의식은 각자가 풀어야 할 개인‧집단적 숙제다. 그렇지만 국민과 제도에 대한 무례는 국가적 문제다. 교만의 끝은 패망이라고 역사는 가르쳐 왔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