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비 넘긴 K반도체, 남아있는 위기는
입력 2023.03.21 06:00
수정 2023.03.21 06:00
K칩스법·300조 클러스터·日 수출규제 등 3연타 희소식
그럼에도 높은 재고 및 실적 악화로 인한 1분기 적자 전망
美 투자 조건 협상 등 넘어야 할 산 많아
여느 때보다 혹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K칩스법 통과와 용인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으로 큰 고비는 넘겼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여기에 일본 수출규제 해제라는 희소식까지 날아들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는 반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다만 그럼에도 반도체는 여전히 다운사이클을 이어가고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올해 1분기 대규모 적자가 예고된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 반도체지원법 관련 협의 조건이라는 까다로운 관문이 남아 있어 아직 국내 기업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관측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6일 조세소위를 열어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세액공제율을 높이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후 약 2개월 만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업이 국가전략산업 시설에 투자할 때 대기업은 15%의 세액공제를 받는다. 중소기업은 25%다.
직전 3년 동안 연평균 투자금액을 초과해 투자한 경우에는 올해까지 10% 추가 공제를 해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추가공제 적용 시 대기업은 최대 25%, 중소기업은 최대 35%까지 세액 공제가 가능해졌다. 기존 기본 공제율이 대기업 8%, 중소기업 16%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제율이 크게 상승했다.
여기에 정부는 경기 용인에 300조원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내용의 국가 첨단산업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해당 사업은 215만평 규모에 2042년까지 반도체 제조 공장 5개를 구축하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등을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지난 3년 넘게 국내 반도체 산업에 리스크로 작용했던 일본산 3대 반도체 소재 수입 문제도 사실상 해결됐다. 최근 일본이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관계 해빙 무드에 따라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에 대한 수출규제를 해제하기로 밝히면서다. 이로써 해당 품목들을 수입해야했던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 하나가 줄어든 셈이 됐다.
이처럼 국내 반도체 업계 숨통을 트이게 하는 소식들과는 대조적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이 남아있는 것이 업계 목소리다. 특히 올 1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늘어난 재고자산과 수요감소에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 재고는 26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삼성전자의 작년 말 재고자산은 52조1879억원으로 전년 41조3844억원과 비교해 약 11조원이 늘었다. 이중 반도체 사업인 DS 부문은 재고자산은 12조원 증가한 2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SK하이닉스는 15조6647억원의 재고자산을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미중 패권 경쟁과 더불어 최근 유럽연합(EU)가 '핵심 원자재법'을 추진하면서 공급망 재편이 자국 우선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당장 수요 감소에 따른 기업들의 적자 우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이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 반도체지원법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엄격한 조건을 내건 상태다. 특히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도 담겼다. 각각 중국 현지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자칫 대규모 손실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반도체 보조금 지급 조건이 과해 대미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자, 미국 국무부는 "외국 뿐 아니라 미국 기업에도 똑같이 해당 조건이 적용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반도체 공장 인건비와자재 등의 물류비가 치솟고 있어 미국 투자 회의론까지 등장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투자 여건이 신속히 개선돼야, 기존에 세워둔 미국 투자 계획을 재검토할 수 있는 여지라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삼성전자의 반도체(DS) 부문은 올 1분기 영업손실 4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KB증권은 삼성 반도체 부문이 올 1분기 영업손실 4조원, 연간 적자 8조8000억원이 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올 1분기 적자가 3~4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SK하이닉스 올 1분기 적자 규모가 4조2000억원을 넘어서고 연간 적자는 11조원에 달할 것이라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