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경제뇌관 지방정부 숨겨진 부채 최소 2500조원대
입력 2023.03.05 07:07
수정 2023.03.06 15:14
中 “일부 지방정부 부채 위험, 원리금 상환 압력 높다” 시인
31개 성·시·자치구 중 17곳…지난해 부채비율 120% 돌파
제로 코로나 강행에 방역 비용 급증, 부동산시장 침체가 요인
올 경제목표 결정 전국인대서 지방정부 부채 해법 제시될 듯
류쿤(劉昆) 중국 재정부장은 지난 1일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주최한 ‘주요 부처와의 대화’에서 지방정부의 재정난을 공식 인정했다. 그는 2022년 지방 공공예산 수입이 10조 8800억 위안(약 2053조원)으로 전년보다 2.1% 감소한 반면, 공공예산 지출은 22조 5000억 위안으로 6.4% 증가했다고 밝혔다. 류 부장은 “일부 지방정부의 경우 상대적으로 부채위험이 높고 원리금 상환 압력도 높다”고 털어놨다.
지방정부 재정 악화는 지난해 ‘칭링팡전’(淸零方針·zero Covid policy) 강행에 따른 방역비용이 급증하면서 예산 지출은 크게 늘어난데 비해 부동산시장 침체로 지방정부의 토지판매 수익이 대폭 감소하는 바람에 예산 수입이 급감한 탓이다.
대표적인 부자 지역인 광둥(廣東)성은 지난해 공공예산 중 보건분야에만 2075억 위안을 쏟아부었지만 당국의 규제로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토지 판매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일상적인 유전자증폭(PCR) 검사비용을 지방정부가 부담하면서 재정 여력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지방정부 부채가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중국의 31개 지방정부 가운데 절반 이상이 부채한도를 초과한 데다 지방정부의 부실이 금융기관으로 전이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31개 성·시·자치구 가운데 17곳이 부채한도를 넘어섰다. 이들 17곳은 지난해 재정수입 대비 부채비율이 120%를 돌파했다는 게 블룸버그의 분석이다. 특히 중국 지방정부가 지난해 지방채 이자 상환에 쓴 돈은 모두 1조 1210억 위안에 이른다. 2018년 5037억 위안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났고 2021년 9280억 위안 대비 20.8% 증가했다.
지방정부 가운데 대규모 항만 개발과 인프라 건설에 집중했던 톈진(天津)시는 재정수입 대비 부채비율이 무려 3배에 달했다. 충칭(重慶)시와 윈난(雲南)·구이저우(貴州)·푸젠(福建)·랴오닝(遼寧)·지린(吉林)성의 부채비율도 200%를 넘었다. 왕리성(王立升) 골드만삭스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부채 부담이 커지면 인프라 투자를 통해 경기부양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지방정부들은 직접 돈을 빌리지 않고 '지방정부 융자기구‘(LGFV)라는 특수법인을 만들어 자금을 조달한다. LGFV는 지방정부가 도로·항만 등 인프라 개발을 위해 만드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다. 지방정부의 토지 등 자산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한다. 이 자금으로 인프라를 개발하고 해당 시설 운영수익으로 채무를 상환하는데, 수익이 많지 않다보니 새 대출을 일으키거나 회사채로 기존 대출을 돌려막기 하는 편이다.
토지 사유권이 없는 중국에서 토지 판매는 최대 70년간의 토지 사용권을 임대하는 것이다. 때문에 토지 판매로 충당하는 토지 재정이 지방정부의 핵심 재원이다. 지방정부 재정수입 가운데 토지매각 수입은 40%(2021년 기준 41.8%)를 넘는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레이팅스에 따르면 LGFV가 지난 1월 조달한 자금의 순증액은 489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82.6% 감소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LGFV의 유동성 위험에 대한 적신호가 켜졌다”고 해석했다.
돌려막기로 연명하는 LGFV 특성상 자금조달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상환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는 말이다. 지방정부 중 재정위기가 극심한 곳으로 꼽히는 구이저우성의 경우 지난해 부채 일부를 갚지 못해 상환기간을 연장해야 했다. 구이저우의 LGFV인 쭌이(遵義)도로·교량건설그룹은 156억 위안 규모의 은행 대출상환 기한을 20년 연장했다. 첫 10년은 이자만, 이후 10년 간 원금을 분할 상환하는 호조건이다. 금리도 기존 7%에서 3~4.5%로 대폭 깎았다.
은행의 대출상환 기간은 길어야 3년 연장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방은행의 주요 주주가 지방정부이고 사업 역시 해당 지역에 대부분 국한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방정부의 이같은 요청은 사실상 거절하기 어렵다.
LGFV가 조달한 자금은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까닭에 정부부채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른바 '숨겨진(그림자) 부채'다. LGFV가 돈을 갚기 어려운 처지가 되면 부도 또는 파산 처리하는 식으로 꼬리를 자른다.
문제는 숨겨진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지방정부의 공식 부채로 잡히지 않는 만큼 그 규모 역시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하지만 S&P는 LGFV의 부채 중 회사채만 지난해 말 기준 13조 5000억 위안(약 2547조원)으로 추정했다. 이를 포함하면 지방정부의 부채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큰 만큼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불린다. 양예웨이(楊業偉) 궈성(國城)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그림자 부채가 공식적으로 드러난 부채보다 2배 이상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LGFV와 지방정부의 이 같은 유동성 위기는 금융기관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인 인프라 개발 부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금을 댄 지방은행이 연체 등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방정부 부실은 금융 부문으로 전이되면서 지방은행의 파산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커졌다. 지방 금융시장이 무너질 경우 국가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어 중앙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방은행이 LGFV에 많이 노출돼 있다는 점은 이들의 건전성을 해치는 요인이다. 쭌이도로·교량건설 그룹은 쭌이시의 첸싱(黔興)지방은행에서 240억 위안을 빌렸다. 해당 은행의 총대출 가운데 4% 수준이다. 반면 대형 중국광다(光大)은행에선 20억 위안만 빌렸다. 이는 광다은행 총 대출의 0.05%에 불과하다.
SCMP는 “구이저우성, 윈난성, 내몽골(內蒙古) 등 저개발 지역의 소규모 은행들은 이미 파산 직전”이라며 “대형 은행과의 예금 경쟁으로 인한 심각한 자금 부족과 최근 몇년간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현지 차입자의 대규모 연체 탓”이라고 전했다. 밍탄 S&P 금융사 신용등급 디렉터는 “일부 소규모 은행이 곤경에 처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며 “최악의 경우 저개발 지역의 은행은 파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 몇 년간 LGFV를 규제하고 부채비율을 낮추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중국 부동산 침체와 코로나19 관련비용 급증으로 중국 지방정부는 LGFV를 통해 토지를 판매해 2조 2000억 위안을 조달하는 등 LGFV관련 부채가 더 커지고 질은 더 악화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정부 부채 문제는 이번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에서 논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예산과 통화정책 방향을 포함한 올해 주요 경제 목표를 결정하면서 지방정부 부채 해법이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해마다 전국인대에서 인프라 투자용 지방정부 특수목적채권의 올해 발행한도를 결정한다. 이 한도는 2021년과 지난해 각각 3조 6500억 위안이었다. 블룸버그는 올해 한도를 소폭 증액한 3조 8000억 위안으로 예상했다. 다만 지난해에 올해 몫 2조 1900억 위안 규모를 미리 발행했기 때문에 실제 부양효과는 2022년보다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에는 2022년 쿼터 중 1조 4600억 위안을 미리 당겨서 썼다.
블룸버그는 그동안 지속 가능한 재정의 중요성과 지역의 부채위험 억제를 반복해 강조해온 중국 지도부가 부채문제 해결 등을 위해 재정 부양책을 쓸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지원액은 이전보다 적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이 이를 위해 올해에는 지난해 발행액보다 적은 3조 8000억 위안의 특별채권 쿼터를 설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사실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 급증은 지난해 중국 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과도한 방역비용, 부동산 경기침체와 급격한 소비감소를 극복하기 위한 세금 감면 조치 등에 원인이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책임이 작지 않다.
블룸버그는 상대적으로 재정 상태가 좋은 중국의 중앙정부가 국가정책 금융기관들로부터 저렴한 금리로 대출받아 이를 지방정부에 저금리로 빌려주는 지원책을 쓸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