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데이터 때문에...' 전국 법원 전산시스템 먹통, 법원행정처장 공식 사과
입력 2023.03.03 10:25
수정 2023.03.03 10:28
새 법원으로 데이터 이관 작업 중 프로그램 오류 발생…작업 지연
복구 안 돼 민사재판 다수 중단…법원 홈페이지서 사건 검색도 불가능
법원행정처 "국민 불편 끼쳐 죄송…방대한 법원 데이터 탓에 오류 발생"
법조계 "안이한 준비로 혼란 자초…전반적인 시스템 점검 필요"
법원 전산시스템 개편 과정에서 프로그램 오류가 발생하며 시스템이 중단돼 전국 법원에서 재판 차질이 빚어졌다. 법원행정처는 "방대한 법원 데이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공식 사과했는데, 법조계에서는 안이한 준비로 혼란을 자초했다며 전반적인 시스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당초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은 부산·수원회생법원 개원에 따른 데이터 이관작업을 지난달 28일 업무시간 후 시작해 2일 오전 4시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오류가 발생하면서 작업이 지연됐고, 결국 업무가 시작하는 오전 9시까지도 시스템이 복구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민형사 재판 관련 전산처리 일체를 담당하는 재판사무 시스템 △판사들이 기록을 열람하고 결정문을 입력하는 법관통합재판지원 시스템 △재판 당사자 등이 재판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일정을 확인하는 전자소송 시스템 등이 전면 중단됐다. 전국 법원 홈페이지에서 사건 검색도 불가능했다.
특히 서면 중심으로 진행되는 형사소송과 달리 대부분의 절차가 전자 시스템으로 이뤄지는 민사소송에서 차질이 컸다. 민사소송의 경우 법정에서 업로드된 조서, 증거 등을 띄워놓고 진행하는데 이런 자료를 불러오는 법관통합재판지원 시스템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에선 이날 민사재판을 진행하려던 11개 재판부 중 3개의 재판부가 재판 기일을 급히 변경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민사 사건은 대부분 전자소송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재판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민사 재판에선 전자서류가 확인되지 않아 요지를 구두로 요약하거나, 종이로 된 서류를 보며 펜으로 다음 기일을 잡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법원행정처는 이날오후 2시 10분경에야 김상환 처장 명의로 "오늘(2일) 중 재판사무 및 전자소송 시스템의 정상적 사용이 어렵게 됐다"며 사과했다.
시스템 중단을 두고 법원행정처는 "방대한 법원 데이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새로 개원하는 부산·수원회생법원으로 약 7억7000만 건의 데이터를 옮겨야 하는데 오류가 발생해 작업이 지체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방대한 데이터 양을 고려하지 않고 안이하게 개편작업에 나서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는 "데이터 이관 작업에는 충분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데 쉽게 생각한 것 같다"며 "데이터 이관이라는 단순 작업으로 서버에 문제가 생긴 걸 보면 랜섬웨어나 해킹 등에도 취약할 수 있는 만큼 전반적인 시스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