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환율·고금리 복합위기에 악재 더하는 화물연대 파업
입력 2022.11.25 15:04
수정 2022.11.25 15:04
경제단체, 업종단체들 잇달아 철회 촉구 성명
건설‧철강업계 피해 이어져…수출 중소기업은 거래선 단절 사례도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의 복합위기로 전 산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의 총파업이 기업들의 시름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파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업들이 가장 취약한 시기를 노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건설협회‧한국자동차산업협회‧한국철강협회 등 주요 업종단체는 25일 오후 서울 대흥동 경총회관에서 노동계 총파업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중단과 지하철‧철도 등 파업 철회를 촉구했다. 경제계는 화물연대가 노동조합이 아닌 개인사업자들의 이익단체라는 점을 들어 이번 사태를 ‘파업’이 아닌 ‘집단운송거부’로 지칭하고 있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전날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화물연대 운송거부 중단 등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경제계가 과거 노동계 파업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는 것은 최근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경총이 지난 13일 발표한 ‘최근 경제 상황과 주요 현안’에 대한 경제전문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7%가 현 경제 상황에 대해 IMF 외환위기 및 2008 금융위기 때와 유사하가나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설문조사는 국내 대학 경제‧경영학과 교수 20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세부적으로 응답자의 27.1%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답했고, 18.7%는 IMF 외환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보다는 더 어렵다고 했다. IMF 외환위기 때와 유사하거나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한 응답자(6.9%)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재 수급과 제품 출하를 위한 물류의 맥(脈)을 끊는 화물연대 운송거부는 기업들에게 치명타가 되고 있다.
화물연대 운송거부 개시 첫날인 지난 24일부터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시멘트 업계는 화뮬연대의 운송거부로 벌크시멘트 트레일러 (BCT)를 이용한 시멘트 육송 출하를 사실상 멈췄다. 하루 약 20만t의 시멘트 수요가 발생하는데 1만t에도 못 미치는 출하량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일부 건설 현장에서는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철강업계도 피해가 심각하다. 현대제철 포항공장에서 하루 8000t의 출하 물량이 나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지난 9월 태풍 힌남노로 공장 전체가 침수되면서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라 운송 수요가 많지 않지만, 파업으로 인해 수해복구를 위한 설비 및 자재 운송이 제한될까 우려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수출입에 생계가 달린 중소기업들이다. 이들은 대체운송수단 마련 등 비상시 대응에 취약할 뿐 아니라 해외 바이어와의 관계에서 ‘을(乙)’의 위치에 있어 생산차질이나 운송차질이 발생해 납품 기한을 넘기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거래선 단절이나 유동성 위기로 문을 닫는 기업들도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24일 화물연대 운송거부 관련 애로 사항을 접수한 결과 원‧부자재 반입 차질로 생산을 중단한 사례가 6건이었고, 납품지연으로 위약금을 물게 되거나 아예 해외 바이어 거래선이 단절된 사례도 16건에 달했다. 대체운송수단 이용에 따른 물류비 증가를 호소한 경우(10건)도 있었다.
이미 지난 6월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로 1조6000억원 이상의 피해를 경험한 산업계는 최근 심화된 복합위기 상황에서 또 다시 장기 운송거부 사태가 벌어질 경우 감내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경총과 업종단체들은 이날 성명에서 “정부와 기업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들이 하나로 단합해 위기를 극복해야 할 시점에서 산업물류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화물연대의 투쟁에 공감할 국민은 거의 없다”면서 즉각 운송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