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⑪] 손주를 미국으로 보내고
입력 2022.10.25 14:01
수정 2022.10.25 14:01
돌보던 손주가 미국으로 가버리자 귀엽고 애교 부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같이 지낼 때는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막상 헤어지고 보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여 깊은 정을 나누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 손녀와 어린이집에 가는 다섯 살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도로 하나만 건너면 되는 딸네 집에 아내와 함께 7시쯤 도착하여 아침을 준비하고 가방을 챙기다 보면 손주들이 일어난다. 기분이 좋으면 베개나 이불을 들고나오면서 "안녕히 주무셨어요? 라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생트집을 잡기 일쑤이다.
밥 먹이기도 쉽지 않다. 배가 고파 스스로 밥을 달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몇 숟가락이라도 먹여서 보내려고 나쁜 습관이지만 좋아하는 핸드폰 동영상을 틀어 주고 거기에 집중할 때 밥과 반찬을 넣어준다. 어느 정도 먹인 다음 옷을 입혀 유치원 버스 오는 시각에 맞추어 허겁지겁 가방을 챙겨 아파트 1층 놀이터까지 데리고 간다. 여기까지 나오면 하루 일을 거의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러기까지는 정신없이 전쟁을 치러야 한다.
손녀는 7살이라 말귀를 알아듣는데 손자는 막무가내다. 손녀를 먼저 버스에 태워 보낸 다음 놀이터에서 놀려고 하는 손자를 갖은 방법으로 유혹하여 길거리까지 데려오기만 하면 킥보드를 타고 신나게 달린다. 따라가려면 힘껏 뛰어야 한다. 9시 반경에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면 해방이다. 오늘도 중요한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손주들이 없는 낮 동안은 각자 볼일을 본 다음 아내는 오후 4시쯤 어린이집에서 손자를 데려오고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손녀를 맞는다. 손주들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줄넘기하거나 그네를 타며 신나게 놀다가 6시쯤 되면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이때쯤 딸네 집에 도착하여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할 동안 손주들을 돌보다 저녁을 먹인다. 저녁은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그래도 아침보다는 잘 먹지만 놀이터에서 엄마들이 가지고 오는 간식을 먹는 날이면 입맛이 없어 겨우 받아먹는다. 딸이나 사위가 퇴근하면 손주 돌보기 일과는 마무리된다. 헤어질 때 손자는 문 앞까지 달려와 양 볼과 입술에 뽀뽀를 해 주는데 입술에 해 주는 짜릿한 느낌은 아내와의 첫 키스보다 더 황홀하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손주들의 티 없이 웃는 모습이나 애교스러운 말들이 떠올라 회심의 미소가 피어나기도 한다.
딸이 미국으로 연수를 가게 되어 온 식구가 떠나게 되었다. 딸이 현지에 먼저 도착하여 준비하기 위해 이민 가방 큰 것 두 개에 짐을 가득 챙겨 떠났다. 새로운 환경에서 아무 도움 없이 애들 데리고 끙끙대며 생활할 것을 생각하자 애처롭기도 하다. 보름 후 사위와 손주들마저 떠난다니 홀가분하면서도 아쉽고 섭섭하다. 7년 동안 돌보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가고 나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출발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손주들의 재롱이 떠올라 허전해지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부풀어 오른다. 사실 손주들을 키워보면 힘든 것이 3이라면 기쁘고 즐거운 것은 7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생활 전부이며 애지중지하던 손주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자주 훌쩍거린다.
사위는 며칠 동안 큰 여행용 가방과 박스 등 6개에 외국에서 생활할 기본적인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다. 손녀도 어린이 여행용 가방에 인형이나 자기 책을 챙긴다. 짐이 많은 데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가야 하므로 출국시간을 6시간이나 앞두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그 많은 짐을 부치고 수속을 마친 다음 점심 식사 후 커피를 한잔하며 기다리는데 손주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새삼스럽고 귀엽기만 하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아쉬운 마음만 가득하다.
11시간이나 걸리는 긴 비행시간에 손주들이 잘 견딜까? 사위 혼자 어린이 두 명을 데리고 가려면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손주들은 엄마 만나러 간다니까 그냥 신나서 공항을 뛰어다닌다. 아내는 연신 눈시울을 붉힌다. 나도 마음이 짠하여 고개를 돌려 창 너머 빈 하늘을 쳐다본다.
미국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졸였던 마음이 안정된다. 아내는 손주들이 보고 싶어 수시로 페이스톡으로 영상통화를 한다. 매일 하던 영상통화도 시간이 지나자 점점 뜸해진다. 아내는 손주들 생각에 가끔 딸이 살던 아파트에 가서 친하게 지냈던 손주 친구들이나 엄마들을 만나기도 한다. 시끌벅적하던 어린이 놀이터도 손자와 손녀 둘이 빠지자 활기를 잃었다고 한다.
우리 집에 두고 간 손주들의 장난감을 보면 블록 쌓고 인형 놀이하며 깔깔대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아침저녁으로 달래고 어르던 애들이 없으니 여유는 있지만 허전하고 쓸쓸하다.
손주 돌봄이 보조로 아침 시간이 바빴는데 이젠 자유로워졌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 속에서 웃는 모습을 보면 손자와 손녀와의 즐거웠던 추억이 떠올라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손주들로 인한 제약에서 벗어나자 인생에 있어 제2의 황금기를 맞이한 기분이다. 아내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 만나고 주민센터에서 운동이나 교육도 마음껏 받으며 재미를 붙여간다.
손주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영상통화 할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해 별로 반기지도 않는 것 같아 벌써 잊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섭섭한 맘도 없지 않다. 손주들에 대한 사랑은 짝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어본다. 옛날부터 '내리사랑'이라 하지 않았던가. 아들딸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이 부모나 조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7년 동안 손주 돌보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애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웃음과 기쁨을 맛보았던가. 요즈음은 아내와 둘이 지내다 보니 웃을 일이 별로 없다. 손주들도 그렇겠지만 우리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나름대로 바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조만간 손주들을 만나러 가겠지만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랄 뿐이다.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