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틴 이즈 백②] “모녀가 함께 BTS 덕질”…‘Z’ 자녀와 ‘X’ 부모의 취향 공유
입력 2022.09.29 14:06
수정 2022.09.29 08:07
X세대 팬덤 활동, MZ세대 팬 문화와 유사
소비력 탄탄해진 X세대, 연예계서도 영향력
'오징어게임' '지옥' 등 콘텐츠도 X세대가 제작
#요가 학원을 운영 중인 박보연(47·여) 씨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팬이다. 13세 딸 서아(13) 양의 영향이다. 박씨는 “딸이 보는 방탄소년단의 영상을 함께 보면서 자연스럽게 팬이 됐다”고 밝혔다. 공통 관심사가 된 방탄소년단 덕분에 두 모녀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박씨는 “콘서트를 함께 보기도 하고, 집에선 ‘달방’(BTS 웹예능 ‘달려라 방탄’ 줄임말)을 시청하고 함께 온라인으로 쇼핑(굿즈)을 하기도 한다. 원래도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긴 했는데 함께 덕질을 하면서 더 친구 같은 모녀 관계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가장 힘 있는 소비자 집단으로 떠오른 엑스틴(X-teen) 세대는 연예계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흔히 팬클럽 1세대로 불리는 X세대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이후 아이돌 1세대로 칭해지는 H.O.T가 데뷔하면서 팬덤을 형성한 첫 세대다. 지금의 엑스틴 세대가 ‘덕질’에 대한 소비에 있어서 윗세대와 달리 열려 있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중년층이 됨에 따라 과거보다 소비력이 더 탄탄해졌다.
이들의 잠들어 있던 덕질의 추억을 소환한 대표적인 ‘요즘’ 아이돌은 방탄소년단이다. 시장조사 전문 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방탄소년단 관련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54.8% 중 50대 66.7%, 40대 52.9%가 방탄소년단에 호감이 있다는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2020년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현 하이브)의 공모주 청약 당시, 40대 아미(방탄소년단 팬덤명)들이 청약에 대거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NH투자증권은 빅히트 공모주 투자자를 분석한 결과 40대가 26.94%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는 앞서 한국언론학회 문화젠더연구회 주최로 진행된 ‘BTS 너머의 케이팝: 미디어 기술, 창의산업 그리고 팬덤문화’ 세미나에 참석해 캐나다 214명 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설문대상에 대해 “팬층의 연령대가 40대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고 백인의 비율도 높았다. 73세 아미를 만나 인터뷰하는 독특한 경험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임영웅도 엑스틴 세대의 팬덤의 주효한 가수 중 한 명이다. 리서치전문회사 한국갤럽이 지난해 전국(제주 제외)의 만 13세 이상 5103명에게 대중 가수/그룹 중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세 명까지 물은 결과(자유응답), 임영웅은 40대 이상에서 36.3%로 2년 연속 ‘올해의 가수’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의 팬덤 활동은 1020대 젊은 세대의 팬 문화와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기부 콘서트는 물론 스밍 총공(음원 스트리밍 총공격), 조공(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 굿즈 구매 등에 동참하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사회를 경험한 Z세대 자녀들의 취향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방송가에서도 엑스틴 세대를 겨냥한 내용들이 잇따른다. MBC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 MSG·WGS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도 40대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뿐만 아니라 tvN ‘둥지탈출’에선 부모와 10대 자녀의 이야기를 담고, 부자·부녀의 여행을 담는 예능 ‘이젠 날 따라와’도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밖에도 10대 자녀와의 고민을 털어놓고 솔루션을 받는 프로그램도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연예계에서 엑스틴 세대는 단순 소비자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가장 트렌디한 것을 만들어내는 콘텐츠 제작자, 인플루언서, 경영자에 X세대가 다수 포진해 있다.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황동혁 감독(1971년생), 글로벌 흥행을 이끈 ‘지옥’의 연상호 감독(1978년생), 세계적인 아티스트 방탄소년단을 만든 방시혁 하이브 의장(1972년생) 등 글로벌 한류 붐의 주역도 모두 1970년대생이다.
이들이 만들어 낸 콘텐츠들은 같은 시대를 산 엑스틴 세대 소비자는 물론, MZ세대까지도 열광한다. 이는 엑스틴 세대가 그만큼 MZ세대의 수요를 잘 파악하고 있다거나, MZ세대와 같은 트렌드를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엔터 업계를 주도하는 것은 엑스틴 세대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건 MZ세대”라면서 “현재 4050세대 즉 엑스틴 세대는 2030세대와 자신들을 구분 짓기보다 꾸준히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방송가에서 이들 세대 간의 이야기를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엑스틴 세대 중심으로 세대 간의 소통이 이어지면서 사회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