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 뒤에 숨은 개딸들, 실체 있나 [고수정의 참견]
입력 2022.09.24 07:00
수정 2022.09.24 05:12
'김건희 특검법 반대' 조정훈에 '좌표' 찍었던 개딸들
정작 공개 면담엔 불참…누리꾼들 "실체 있는 거 맞나"
이재명, 과거 "팬덤 정치, 의미있다" 치켜세운 바 있어
개딸들, 무자비한 폭언 행위에 스스로 정당성 부여한 듯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열성 지지자,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은 실체가 있나. 정치권 안팎에서 '개딸' 정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온라인상에서 행해지는 이들의 말, 현실에서 보이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6·1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진 날, 한 방송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개딸'이라는 게 2030 여성이 아니다. 그 사람들 올리는 글들을 보게 되면 4050 아주머니다".
실제 '2030 개혁의 딸들이 4050 선배님들께 전하는 위로와 감사'라는 제목으로 묶인 글들을 보면 '행동하는 양심의 불꽃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우리는 동지이자, 한 가족이다' '2030 냇물이 민주의 강물과 개혁의 바다로!' 등의 문장은 전형적인 4050 세대 문법으로 분석된다. 다시 말하면, 'MZ 세대'로 불리는 2030의 문법이라고 보기는 다소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과정, 민주당 전당대회 때를 돌이켜보면, 실제 이 대표를 따라다니는 지지자들은 대체로 '개이모(개혁의 이모)'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연령대다. 민주당 중앙당 당사 앞에서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민주당 내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수박 깨기 퍼포먼스를 벌이는 여성들만 보더라도, 이러한 관측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개딸'이든 '개이모'든 '개주머니(개혁의 아주머니)'든 문제는 이들이 '익명성'을 방패 삼아 소수인 자신들의 의견을 마치 다수의 의견인 양 포장하고, 자신들과 배치된 의견을 낸 사람들은 '좌표'를 찍어 공격한다는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 반대 입장을 밝힌 후 '개딸'들의 문자 폭탄과 항의 전화가 폭주해 업무가 마비됐다며, 차라리 공개적으로 만나서 토론하자고 제안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23일 2시간 반여 동안 단 1명의 이 대표 지지자만 만날 수 있었다. 이마저도 '개딸'이 아닌 '개이모'로 추정되는 여성이었다. 간담회 종료 직전 면담장을 찾은 이 여성은 "그들이 특검을 주장하는 건 검찰 권력이 강해 힘의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등 이 대표와 민주당 옹호론을 펼쳤다.
'개딸'들이 조 의원 면담에 응하지 않을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항의성 불참'이라는 해석도 나왔지만, 그들이 익명성 뒤에 숨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정훈 의원실 관계자는 "마지막에 온 여성분은 자신이 '개딸'은 아니라고 하더라. 그러면서도 이 대표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시더라. 조 의원은 생각이 다르면 익명성 뒤에 숨지 말고 공개적으로 토론하자는 입장을 이날 밝혔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개딸의 실체가 있느냐'는 의심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조 의원의 공개 면담 기사에도 같은 취지의 댓글이 여럿 달렸다. '개딸은 실체가 없다', '온라인으로 막 쏘아 대고 일대일로 얘기하자니까 안 나와? 다음 상황은 말 안 해도 국민의 판단에 맡기겠다', '숨은 카르텔, 몇명 안되는 팬심이 당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면서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느낌이 든다'는 내용들이다.
라디오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TV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인터넷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듯 팬덤 정치는 강력한 정치인을 탄생시킨다는 순기능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익명성 뒤에 숨은 이들의 행위는 팬덤 정치를 '악질 정치 문화'로 변질시켰다.
'말'이라는 흉기로 정치 품격을 떨어뜨리는 '개딸'들의 행위를 두고 당내에서도 비판이 나오지만, 이재명 대표는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치켜세울 뿐이다. '개딸'들의 '아빠'가 용인했으니,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수위 높은 비난 행위를 멈추지 않는 것 아닐까. 익명성 뒤에 숨은 무자비한 욕설과 폭언은 위협적이고 공포스럽다는 것을 정말 그들만 모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