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부부의 검찰 길들이기
입력 2022.09.12 07:07
수정 2022.09.13 02:21
상상력 빈곤 절감케 하는 김씨 해명
언제부터 ‘주군-가신’ 맹약을 했나
포퓰리즘 정치 반드시 부메랑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인 김혜경 씨는 경기도 5급 별정직 공무원 배 모 씨의 초 밀착 수발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렀다. 물론 그 명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배 모 씨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절엔 직접(?), 경기도 지사가 된 후엔 하급자를 부리는 식으로 시중을 들었다. 경기도 7급 공무원이었던 그 하위 노복(奴僕: 자신의 일과 90%가 김 씨 관련 심부름이었다고 주장했으니, 사실이라면 이런 몸종이 따로 없다)은 음식 심부름을 할 때마다 상급자 배씨에게 보고하고 사진까지 찍어 보낸 것으로 언론들이 보도했다.
상상력 빈곤 절감케 하는 김씨 해명
그런데 정작 김 씨 자신은 모르쇠다. 지난 7일 수원지검에 출석한 그는 “배씨의 법인카드 유용을 지시하거나 묵인한 사실이 없다”고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상상력을 억지로라도 발휘해 보자.
1. 김씨가 허위 진술을 했을 경우=그럴지도 모르지만 초거대 제1야당 대표 부인이 설마 혐의를 아랫사람, 그것도 충복에게 전가하기야 했겠는가 하는 강한 의문이 생긴다. 2. (경기도 별정직 5급 공무원) 배씨가 (7급 별정직 공무원) A씨를 시켜 음식 등을 김씨 아파트 현관 앞에 가져다 놓게 하고, 자신이 그걸 회수해서 먹었을 경우=5급 공무원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치사한 짓을 그처럼 겁도 없이 벌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3. 배씨의 지시를 A씨가 잘못 알아듣고 김씨 집에 음식을 배달했을 경우=잘못 알아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수십 번 반복할 수는 없다. 4. 배씨와 A씨가 짜고 법인카드를 유용·횡령했을 경우=가장 현실성 없는 상상이다. 5. 김씨가 필요할 때마다 현관문 앞에 원하던 음식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우렁각시의 봉사’로 착각했을 경우=동화나 우스개 이야기로도 너무 구식이다.
어느 경우도 아니라면 멀쩡한 공무원이 도대체 왜 까닭 없이 개인카드 법인카드 분주하게 바꿔가면서 음식을 사다가 도지사 자택 현관 앞에 가져다 두곤 했을지, 상상력의 빈곤을 절감하게 된다. 그 집 현관 앞에서 무슨 제사 지낼 일이라도 있었다는 건가?
이 대표는 부인 김씨의 검찰출석과 관련, “아내가 카드를 쓴 적이 없고, 카드는 배 모 비서관이 쓴 사실도(이) 확인됐다. 아내는 배씨가 사비를 쓴 것으로 알았고, (자신 몫의) 음식 값을 줬다는 점도 밝혔다”고 주장했었다.
지난달 2일 김씨가 민주당 당직자들과 점심식사를 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러니 문제가 없다는 것인데, ‘배씨의 사비’가 마음에 걸린다. 다른 모든 음식 값도 배씨가 사비로 사다 바친 것으로 알았다는 뜻일까? 그걸 아랫사람의 충성심으로 알아서 기특하게 여기며 마음 편하게 받아먹었다? 설마 그러기야 했을까.
언제부터 ‘주군-가신’ 맹약을 했나
이 대표 자신은 검찰에 ‘정치보복’ ‘야당탄압’ 프레임을 씌우는 재미에 빠져 든 인상이다. 그런데 대선에서 이긴 측이 진 측에 대해 보복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탄압’은 더욱 부자연스럽다. 행정권은 윤석열 대통령이 장악했지만 입법권은 민주당 차지다. 그 세력을 누가 탄압할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 대표와 그 부인을 건드린다는 거지? 좋아 우리도 갚아주지 뭐.”
민주당은 그런 심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김건희 특검법안’을 7일 발의했다. 대표 발의자가 박홍근 원내대표다. 직전 집권당, 거대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이야말로 정치보복이라고 해야 할 법안의 발의에 앞장선 것이다. 조건반사적 입법 압박을 이처럼 공공연히 가하면서도 당당하다. “정치공세가 아니라 범죄에 대한 공정한 수사 요구”라고 했다. 문재인 정권 때는 뭘 하고 지금 와서 정의감을 자랑하는가.
민주당의 법적 정의감 과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패스트트랙으로 국회 법사위를 뛰어넘거나 김진표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토록 하거나 하는 방안도 있다고 으름장이다. ‘국정조사’ 또한 매뉴얼에 포함돼 있다. 이 대표 부부를 구하기 위해 민주당이 ‘당론’이란 깃발을 치켜든 것이다(단체 관광하고 온 사람더러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더니 “깃발 밖에 본 게 없어서…”라고 했다던데, 민주당의 행태가 꼭 그 짝이다).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할 힘을 가진 공룡정당의 소속의원 대다수가 이 대표 수호대를 자임하다니! 그 일사불란한 충성심 과시가 경이롭다. 민생안정, 수해수습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쳐둔 빛이다. 옛날 ‘3김 시대’의 보스정치도 이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무조건 적인 충성을 과시하던 가신들도 때로는 격하게 보스를 들이받았다. 민주당 의원들, 이 대표와 언제부터 주군-가신의 맹약을 했다는 것인지, 맹목적이기까지 해 보이는 그 충성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일이 세어보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혐의와 의혹을 받아온 사람이 이처럼 호기롭게 공권력에 맞서는 경우는 듣고 보느니 처음이다. 민주당의 철통같은 당 대표 옹위와 당헌의 셀프 보호 장치, 거기에 ‘개딸’ 등 극렬 지지세력이 포진해 있다. 이러니 코끝이 하늘로 치솟을 수밖에.
포퓰리즘 정치 반드시 부메랑된다
검찰이 출석을 요구하자 최측근이라는 김현지 보좌관이 휴대전화로 ‘전쟁입니다’라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이 대표는 그 화면을 국회 본회의장 취재 사진 기자들이 봐달라는 듯이 펼쳐 보였다. “나를 부르려면 전쟁 각오해”라는 경고였을까? 이 대표 측은 검찰의 서면조사 요청 3건 가운데 2건은 이미 응했고 1건은 준비 중이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6일 공개 소환했다고 공격했다.
검찰의 해명은 다르다. 지난달 19일 서면 질의서를 보내면서 그달 26일까지 회신을 요청했는데 답변이 없어서 31일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전면전’ 운운하며 을러대다가 소환 시점인 6일에야 답변서를 보냈다. 그러고는 ‘소환 사유 소멸’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그 답변서라는 것이 5줄도 못 채울 분량이었다고 한다. 검찰은 20쪽 분량의 질문서를 보냈는데 답변서라는 게 그 지경이었다는 거다. 변호사이니까 서면답변서 작성엔 도가 트였겠지만 형사사법기관 경시와 우롱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 모두가 이 대표처럼 교만을 떨면 제도의 의의 자체가 무너진다. 유독 이 대표만 그런 것이라면 민주정당 대표, 국민 대표로서의 자질 부족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대표 측은 ‘개딸’ 등 지지 세력의 강력한 결집력을 크게 믿고 있는 듯하다. 팬덤에 파묻혀 있는 동안에는 세상이 자신의 편인 것처럼 여겨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팬덤은 정치적 덫이 될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바로 그 덫에 걸린 경우다. 지지자들이 많아졌지만 반대자들은 더 많아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도 ‘문빠’ 혹은 ‘문파’의 ‘열화 같은 성원’이 ‘증오 어린 비난’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평산리의 격한 시위가 그 편린(片鱗)이다.
9월 11일자 중앙일보의 한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끈다.
“한동훈 팬덤에 난타당하고, 개딸에 '숙청'당하는 민주 의원들”
포퓰리즘 정치는 일시적으로는 성과를 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큰 부담이 된다. 대중의 무조건적 지지는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치게 된다. 특히 민주당 이 대표가 유념할 일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