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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의 은퇴일기⑦] ‘어머니’ 외친 학도병의 일기…‘눈물’로 본 다부동전적기념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8.30 14:47
수정 2022.08.30 14:52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30여 명이 부산-경주-대구를 거치는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지방 문우들과 오랜만에 만나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가 이어지자 서먹하던 분위기가 오랜 친구처럼 바뀌었다. 부산의 누리마루 하우스와 경주의 동리목월문학관, 대구의 청라언덕을 둘러보았지만, 나의 마음이 꽂힌 곳은 대구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이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입구ⓒ

처음 문학기행 일정표를 받았을 때 대부분의 방문지는 각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와 문학관을 비롯하여 문인들이 좋아할 만한 곳인데 ‘문학기행과는 어울리지 않게 왜 이런 곳을 포함시켰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외 전시관에 들어서자 6·25전쟁 당시 사용했던 탱크와 장갑차를 비롯하여 헬기와 같은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날씨가 더워 금방 등에서는 구슬땀이 흘러내린다.


다부동 전투 당시 낙동강 전선 현황ⓒ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 6.25 당시의 전투와 관련한 영상을 보았다. 다부동 주변 유학산을 중심으로 한 이곳은 대구 방어의 중요한 요충지로 여기가 뚫리면 부산으로 옮겨 가 있던 임시정부는 해외로 망명해야 할 절박한 순간이었다. 백선엽 준장이 지휘한 1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55일간 혈투를 치러 공산군의 소위 '8월 총공세'를 격퇴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북진의 발판을 마련한 구국의 격전지라는 것을 알았다. 이 전투에 투입된 군인은 아군 1만 5000명, 적군 3만 명 중 사망자가 3만 4000명이나 되어 참전군인 중 75%가 사망하는 무시무시한 전투였다.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일기의 한 부분은 나의 폐부를 후볐다.


전시관에서 영상 자료를 시청하는 문인 일행ⓒ

"어머니 나는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을 죽였습니다. 적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어쩌면 오늘 제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꼭 살아 돌아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아! 이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전사한 이 소년병(동성중학교 4학년, 18세)의 주머니 속에 있던 일기는 핏자국으로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동료와 함께 전사함으로써 어머니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영상을 통해 이 일기 내용이 흘러나오는 동안 머리가 멍해지면서 가슴이 저미어 왔다. 이런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평안하게 살아오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고향의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샘물에 밥 말아 먹던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도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다고 했을까?. 참호 속에서 소대원을 지휘하며 다가오는 적을 향해 총을 쏘는 내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움과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다.


구국용사충혼비 앞에서 묵념 한 후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는 문인 일행ⓒ

마음을 가다듬고 충혼탑 앞으로 모였다. 줄 맞추어 서서 헌화하고 분향을 한 후 1분 동안 진혼곡에 맞춰 묵념했다. 온갖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8월의 뜨거운 참호 속에서 적군이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절박한 상황에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 순간에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으려나.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이 있는 것도 이런 분들의 덕분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가장을 국가에 바치고 어렵게 사는 전몰유족 후손들이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두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묵념이 끝나고 뒤로 돌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뿌연 눈에는 파란 하늘에 흰 구름만 무심히 흘러간다.


다부동전적기념관 야외에 세워진 구국용사충혼비ⓒ

다부동 전적지는 고향인 상주에서 대구로 들어가는 고갯마루 아래 있어서 여러 번 지나쳤지만 직접 들려 보기는 처음이다. 언젠가는 참배해봐야지 하면서도 기회가 오지 않았다. "문학기행 장소로 왜 이런 곳을 포함시켰지?" 했던 나의 마음은 "참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어서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오랜 역사에서 보아왔듯이 자유와 평화는 스스로 지킬 힘이 있을 때만 누릴 수가 있다.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더욱 그러하다. 몇 년 전 제주도 여행 중에 '평화박물관' 앞을 지나면서 건물 전면에 큰 글씨로 '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and peace not free)라는 글을 보고 가슴에 확 다가와 들어간 본 적이 있었다. 또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공원에도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말은 어쩌면 세계적으로 보편적이면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격언이 된 것 같다. 6·25전쟁 당시 우리의 국방력은 보잘것없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우방과 유엔군이 흘린 피로 지금까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다시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국방력을 확립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오늘도 호국영웅들은 말하는 것 같다.


"국가경제는 일시적으로 어려워지면 그 고통을 감내하며 극복할 수 있지만, 국가안보가 무너져 대한민국이 사라진다면 그동안 누려왔던 자유와 평화도 없을 것이라고…."


그 날의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희생으로 오늘날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이웃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이번 문학기행에서 나라 사랑 정신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호국영웅들에 대한 감사함과 '국가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다시 일깨워 주는 시간이 되었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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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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