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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원맨쇼로는 역부족"…美 IRA '유예'에 민·관 힘실어야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2.08.29 11:28
수정 2022.08.29 11:28

넉다운 방식·딜러 인센티브 정책 등 땜질 처방으로는 극복 어려워

전기차 전환도 비용·시간면에서 비효율…IRA 유예 또는 세부조항에 명운 걸어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환담을 마치고 국내외 언론 스피치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북미산 전기차-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현대차그룹 등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국내 기업들의 생존이 위태로워졌다.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IRA를 그대로 적용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별다른 '묘수'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결국 법안 시행 유예나 세부조항 추가 등을 최우선으로 두고 민관이 바이든 정부 설득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는 진단이 제기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IRA 대응을 위해 정부와 현대차그룹은 미 행정부, 의회, 백악관 등을 대상으로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외교부 등 주요 인사로 구성된 정부 합동대표단은 이날 미국으로 출국해 29∼31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머무를 예정이다.


무역대표부(USTR) 뿐 아니라 재무부, 상무부 등 주요 기관과 의회를 방문해 IRA 내용 중 전기차 보조금 제도에 대한 우리 측의 우려와 입장, 국내 여론 등을 전달하고 보완 대책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이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일주일 전인 지난 23일 공영운·장재훈 현대차 사장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자세한 스케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IRA로 타격이 적지 않은 만큼 해법 마련을 위해 다양한 미국측 정·관계 인사를 만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와 현대차그룹이 긴박하게 행동하는 것은 IRA 시행은 곧 한국 산업의 퇴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연말까지 7500달러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전기차 모델(21개)에서 현대차·기아 모델은 제외돼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격경쟁력에서 다른 글로벌 브랜드에 밀려 판매가 감소하면 올 상반기까지 끌어올린 미국 시장 점유율(약 9%)을 방어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아이오닉5, EV6에 대한 현지 반응이 아무리 뜨거워도 같은 선상에서 경쟁할 수 없으니 유의미한 판매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중국을 견제한다는 목적으로 미국이 자동차, 배터리를 시작으로 반도체, AI(인공지능), 자율주행 등으로 제한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IRA 법안 시행을 유예하거나 우리에게 유리한 조항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바이든 정부를 설득하는 게 급선무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현지 공장 라인 전환, 최종 조립만 미국에서 하는 넉다운(Knock Down) 방식 등이 거론되지만 실익은 적다는 것이 중론이다.


넉다운의 경우, 울산공장 등에서 만든 전기차 반조립 부품을 미국 생산공장인 앨라배마 공장 등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식이다. 최종 조립은 미국 내에서 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만큼 중국산 배터리만 달지 않으면 보조금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방법은 국내와 미국 법인이 함께 물량 계획을 세워야 하는 관계로 현지 수요 변동성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힘들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배터리도 국내에서 공급받던 물량을 일부 미국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과의 사전 공조가 필수적이다. 과정이 복잡한데다 전기차 전용 공장 운영 이전까지 하는 땜질식 처방이라 장기적인 대안으로는 적절치 않다.


판매 방어를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마케팅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기차 공장 상업화까지 걸리는 공백 기간 동안 보조금 일부를 지원하는 프로모션 등으로 시장점유율 방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딜러 인센티브를 보다 확대해 판촉을 유도하는 것도 판매 타격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기차 전용 공장 가동 이전까지라는 조건이 붙지만 현대차는 이 기간 '팔수록 손해'를 감당해야만 한다. 이 같은 '울며 겨자먹기' '수익 깎아먹기' 정책을 주주들이 찬성할지도 미지수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현지 근로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 설비 일부를 전기차 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은 투자 대비 실익을 얻기가 어렵다. 국내에서 생산하던 차량 일부를 미국에서 생산한다는 것인데, 이는 고용과 직결된 사안이라 노조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협의 끝에 아이오닉 5·EV6 일부 물량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줄어드는 국내 물량을 보전하는 방안을 노조측에 제시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욱이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 구축을 위해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비효율적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GV70 전동화 모델과 같은 내연기관차 플랫폼 기반의 전기차는 기존 현대차·기아 미국 공장 설비로도 생산이 가능하지만, 순수 전기차 모델들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갖춘 전용 공장에서 제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기존 설비를 바꾸지 않고 전용 공장을 새로 짓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민간기업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여러가지면에서 한계가 분명한 만큼 IRA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가급적 유예하거나 수정 수순을 밟을 수 있도록 민·관이 전략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특히 IRA가 WTO 보조금 규정 협정에 위배되고 한미FTA에 규정된 내국민 대우(제2조 2항) 원칙에도 벗어난다는 점을 근거로 한국산 제품이 북미산에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적극 피력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는 보조금 미지급 기간 적용을 일정 기간 유예 받거나 수입 쿼터(할당량)를 최대한 부여 받는 방안 등을 이끌어내는 것이 현실적이다.


WTO 제소의 경우, 하급심인 패널(panel) 판결까지 가는 데만 1년 정도 소요되는 데다, 최종심 역할을 하는 상소기구는 2019년부터 사실상 기능이 마비돼있는 만큼 실익을 거두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IRA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노골적 견제의 시작에 불과하다. 반도체, AI(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미·중 대립 범위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국내 기업의 대규모 대미 투자 등을 부각시켜 우리에게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민·관이 골든타임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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