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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전쟁-②] "살아남으려면 탈중국하라" 배터리업계 '발등의 불'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2.08.25 06:00
수정 2022.08.24 16:52

美, 中 공급망 견제 움직임에 배터리·소재 기업 '불똥'

수산화리튬, 코발트 등 중국산 비중 80% 넘어서

원료 수입선 다변화 및 가공·제련업체 다각화 필수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과 스텔란티스, 인디애나 주정부 관계자들이 5월 합작법인 설립 체결식 이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쉐인 카르 스텔란티스 대외협력담당 임원, 마크 스튜어트 스텔란티스 북미COO,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에릭 홀컴 인디애나 주지사, 브래들리 체임버스 인디애나 상무장관, 타일러 무어 코코모 시장ⓒ삼성SDI

글로벌 패권을 놓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이 이번에는 공급망으로 맞붙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중국 견제에 나섰고, 중국은 막대한 광물을 무기로 보란듯이 글로벌 장악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급망을 둘러싼 미·중의 힘겨루기가 가열되면서 국내 자동차·배터리산업의 생존방안 마련이 시급해졌다. 3회에 걸쳐 국내 주요 산업들을 점검하고 돌파구를 모색한다.<편집자주>


중국 공급망에 대한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불똥'을 맞고 있다. 당장 국내 배터리업체들에겐 원료 수입선 다각화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그간 캐나다, 호주, 칠레 등에서 원자재 공급 규모를 늘려오긴 했지만 미국이 내건 기준을 충족하기엔 역부족이다.


16일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제련한 광물 비중을 확대하는 동시에 ▲북미 배터리 생산 비중을 늘려야만 한다.


광물 비중은 2023년 40%를 시작으로 매년 10%p씩 상향돼 2027년에는 이 비중이 80%로 확대된다. 배터리도 50% 이상을 북미에서 생산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는데, 2027년에는 80%, 2029년에는 100%까지 비중을 늘려야 한다.


일찌감치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주요 미국 자동차업체들과 손잡고 북미 시장 점유율을 늘려온 배터리 3사는 IRA 법안 통과로 성장 기회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데 입장을 같이 한다.


북미산 전기차에게만 보조금 혜택이 주어지는 만큼 현지 생산·투자 확대를 위해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굴지의 완성차업체들이 배터리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실제 IRA 발효 직후 주요 완성차업체들은 북미산 공급망 확보에 발 빠르게 나섰다. 블룸버그는 폭스바겐그룹과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이 캐나다와 니켈, 코발트, 리튬 등 배터리 소재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협정을 23일(현지시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폭스바겐은 배터리 원자재 확보를 위해 캐나다 광산 업체들의 지분 인수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폭스바겐 합의는 미국 시설을 위한 공급망 거리를 단축하고 관세 및 세금 규제 관련 어려움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난주 통과된 IRA에 일부 기인했다"고 전해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의 움직임이 미국 결정과 무관치 않음을 시사했다.


포스코의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 데모플랜트 공장 및 염수저장시설ⓒ포스코

원료 수입선 다각화에 나선 자동차업체들이 북미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국내 배터리사와 손을 잡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LG·삼성·SK는 고급 전기차와 저가의 경형·소형 전기차에 각각 적용할 배터리 기술 개발에서 가장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이 같은 러브콜은 중국산 원료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낮춘 것을 전제로 한다. 특히 배터리 핵심 소재로 쓰이는 수산화리튬, 코발트의 경우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7월 수산화리튬 수입액은 17억4829만 달러로, 이중 중국 수입액이 84.4%(14억7637만 달러)를 차지했다. 코발트 중국산 수입 비중도 80%를 넘어선다. 포스코가 아르헨티나에 리튬공장 투자를 진행중이나 완공 시점이 2024년이어서 이 기간 생산 공백을 피할 수 없다.


IRA는 채굴한 광물을 중국에서 제련·가공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어 배터리 기업들의 부담은 더 커진다. 현재 가공업체 80% 이상이 중국에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광물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가스 등 환경 이슈로 타국 업체들이 운영을 기피한 영향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북미에서 아무리 수십 만, 수백 만 단위의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차세대 기술 개발에서 아무리 앞서 있더라도 결과적으로 배터리 소재 조달 및 가격 협상에서 열위를 보이면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전기차 가격 경쟁에서 밀리면서까지 국내 배터리 기업을 고집할 전기차 업체는 없다.


폐배터리 재활용(리사이클)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엔 미미한 수준이다. 폐배터리에서 광물을 추출해 다시 배터리로 만드는 만큼 환경·비용면에서는 효율적이나 공급망의 한 축으로 자리잡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LG화학 양극재 제품 사진ⓒLG화학

결국 배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 우호국을 중심으로 원료 수급을 다각화할 뿐 아니라 광물 제련·가공업체와의 거래를 대폭 늘리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높은 중국 의존도를 벗어나면 궁극적으로 안정적이면서 균형적인 원자재 수급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장상식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배터리 소재 공급망이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몰려있기 때문에 다각화 수순으로 가는 것은 맞다"면서 "다만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갈 수 있도록 국가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미 전기차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국내 배터리사와의 협업이 필수적인만큼 미국이 IRA 세부사항을 완화해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특히 원료 조달 부문은 기업 기밀사항이어서 일일히 따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을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화학물질 조합으로 구성된 배터리를 일일히 분해해 광물 원산지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북미 시장 내에서의 국내 배터리 기업 입지를 고려하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협력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양측에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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