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농사직썰㊺] 16km의 비밀…토종벌이 선택한 청정지역 ‘위도’
입력 2022.08.25 06:30
수정 2022.08.24 09:31
꿀벌 격리 육종장, 유전자 보존 주목
순혈통 보급 전진기지 역할 담당
국내 양봉발전 및 우량품종 생산 기대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꿀벌은 인류 식량자원의 주요 공급 수단이야. 농작물 결실의 주요한 매개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특히 꿀벌은 세계 100대 식량작물 중 71가지 식량자원의 생산에 기여하고 있어. 안동대학교 정철의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농업 생태계에서 꿀벌의 가치는 5조9000억원으로 평가할 정도야. 꿀벌이 식량 생산에 기여하는 있는 만큼 꿀벌이 사라진다면 식량 위기의 발생이 예상되는 이유야.”
최근 주요 언론에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꿀벌은 대표적인 화분매개 곤충이다. 산업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 유지 보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꿀벌이 사라진다면 식량자원의 생산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체 생태계도 붕괴될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진흥청이 국내 토종벌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020년 부안군 위도면에 문을 연 ‘꿀벌 위도 격리 육종장’이 그 주인공이다.
농진청은 그동안 토종벌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 없는 연구와 고민을 거듭했다. 그 결과 꿀벌의 공중교미 습성으로 내륙지역에서는 계획교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청정지역’ 물색에 나섰다. 부안군에 위치한 위도는 이런 토종벌의 유전자 보존과 개체 수 확장에 안성맞춤인 지역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꿀벌의 최대 비행 거리는 벌통 반경 6~9.2km다. 위도는 부안 격포항에서 15.9km 떨어진 지역이다. 벌들간 이종교배가 이뤄질 수 없는 거리인 셈이다. 특히 위도는 육종장 이외에 양봉농가가 없다는 장점도 있다. 이종교배 위험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만영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장은 “위도 육종장은 국내 유일한 격리육종장이다. 효율적인 순계보존과 교배종 생산이 가능하다”며 “농가 수요에 맞는 맞춤형 품종개발・보급의 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 ‘인류의 동반자’ 꿀벌의 보존 가치
인류가 꿀벌을 이용하기 시작한 최초의 증거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발견된 ‘여성의 꿀벌사냥’ 암각화다. 기원전 7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바빌론, 페르시아, 에티오피아 등에는 꿀벌과 벌꿀의 이용에 관한 많은 기록이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신이 어린 시절 반인반신인 자매에게 양육될 때 산양의 젖과 꿀로 키워졌다고 기록돼 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5년)는 열이 날 때 벌꿀을 음용토록 하는 등 벌꿀을 귀중한 의약소재로 활용했다.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는 유리로 벌통을 만들어 관찰하고 벌의 습성과 밀랍 등 산물에 대한저술을 남겼다.
꿀벌산업은 17세기 이후에 ‘꿀벌 이용의 3대 발명’이 이뤄지면서 빠른 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미국 랑스트로스와 지어존 취급이 쉬운 벌통, 독일 메링의 인공 벌집 기초, 오스트리아 루슈카가 원심분리 꿀 채취기술을 개발하며 전성기를 달렸다.
현재 꿀벌산업이 가장 발달된 나라로는 미국과 캐나다가 대표적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도 풍부한 밀원식물을 기반으로 꿀벌 산업이 발달했다.
우리나라에서 벌 이용은 고구려 동명성왕(BC 37~19년)때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동양종 꿀벌이 도입된 것이 시초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백제 의자왕의 태자가 선진적인 벌 이용 기술을 신라와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존재한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벌꿀은 주요 교역품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유밀과(油密果) 등 다양한 조리방법이 등장하면서 소비가 확대됐다.
또 조선 숙종 때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는 벌꿀의 산지, 벌 사육 기술, 꿀 채취 기술 등을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근대적인 의미의 꿀벌 사육은 독일계 구걸근(具傑根, Kügelgen) 신부가 1910년대 일본을 통해 수십 통을 도입, 보급한 것이 시초다.
고대부터 꿀벌은 사회성, 계급체계 등 고유 생활습성과 꿀 등 산물의 희귀성 때문에 인간들에 의해 다양한 상징으로 활용됐다. 고대 이집트와 수메르에서는 왕을 상징하는 문자가 꿀벌 형상이었다. 이집트 초기왕조에서는 왕을 ‘꿀벌의 임금’이라 호칭하기도 했다.
중세 서양에서는 왕족, 귀족가문의 휘장에 불멸과 부활의 상징으로 꿀벌 문양이 애용됐다. 꿀벌은 겨울에 죽은 듯이 동면해 있다가 봄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습성에서 연유된 것이다.
나폴레옹은 황제 대관식(1804년)에서 벌 무늬 옷을 입었다. 주변국 휘장에 충성의 표시로 벌 문양을 넣을 것을 강요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농진청, 세계 최초 질병에 강한 ‘토종벌’ 개발 쾌거
위도 육종장의 중요도와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왜 토종벌을 보존해야 하는지,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한다. 토종벌 보존이 필요하다고 인식된 시기는 2010년 전후다.
당시 토종벌 에이즈(AIDS)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낭충봉아부패병이 전국에 확산되면서 최초 70% 이상 토종벌이 폐사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처럼 질병이 만성화되면서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폐사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농업과학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병저항성 계통을 육성했다. 2016~2017년 각각 질병저항성을 가진 1계통씩(R, H계통) 선발해 각각 모계와 부계로 이용, 질병저항상이 가장 우수한 교배종인 RH계통을 보급종으로 개발했다.
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 저항성 계통은 일벌의 수명이 기존 질병보유 일벌 대비 10일 정도 연장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형질 특성인 낭충봉아부패병에 대해서는 완전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는 계통으로써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병징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연구를 진행한 최용수 국립농업과학원 꿀벌육종연구실장은 “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 자항성 계통이 전국에 확대 보급되면 벌꿀 생산성은 질병발생 수준보다 향상될 것”이라며 “화분생산 및 화분매개봉군으로 이용 가능성이 우수한 계통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양종꿀벌을 비롯한 토종벌에 대한 품종개발 사례는 국내에서 최초로 이뤄진 성과다. 특히 토종벌은 아시아권 국가에서만 사육을 하고 있다. 품종연구를 비롯한 관련 연구 성과가 미흡한 상황에서 전체 토종벌 사육 중인 국가의 경우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바이러스성 질병인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최소 70%에서 90% 이상 꿀벌이 폐사하는 문제점이 노출됐다.
최 실장은 “토종벌 질병저항성 계통이 전국 확대 보급되면 잃어버렸던 생산 기반을 회복하고 궁극적으로 종복원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며 “특히 토종꿀 생산이 원활해져 농가 소득 수준이 향상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꿀벌 화분매개 효과인 5조9000억원 가치를 견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종벌 보존 위한 전문가 육성 절실
꿀벌은 인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관련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위도 육종장의 경우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과장은 “꿀벌 개체수 감소가 지속된다면 꿀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농작물 생산과 생태계 보전의 역할을 하지 못해 인류 생존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벌을 연구하고 토종벌 유전자 보존을 위한 전문가 육성이 필요하다. 위도와 같은 꿀벌을 보존하기 위한 육종장 확대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업과 생태계 유지·보전 등 높은 공익적 가치를 지닌 꿀벌을 보호·관리하고, 양봉산업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과 국민 건강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양봉산업의 육성 및 양봉산업의 육 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시행 중이다.
또 농촌진흥청에서는 꿀벌을 안정적으로 사육하는 관리기술을 개선하고 관리에 편의를 제공하는 디지털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인 원인 해결을 위한 병해충 저항성 및 생산물 다수확이 가능한 꿀벌 품종을 개발하는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농작물 화분매개효과 향상기술 개발로 작물별 봉군관리와 디지털 전용벌통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품질 양봉산물 생산과 이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개발 등 연구도 활발하다.
이러한 기술들이 현장보급을 위한 신기술 시범사업과 현장기술지원을 통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가 해결되고 농가 소득과 직결돼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꿀벌이 건강하게 사육 관리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과장은 “꿀벌은 우리 인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곤충이라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꿀벌 먹이를 제공할 수 있는 밀원식물을 많이 심는데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며 “꿀벌을 사육하는 양봉농가가 없으면 꿀벌도 사라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꿀벌을 키우는 양봉농가들에 대한 공익적인 배려도 중요하다. 꿀벌은 기후변화에 민감한 곤충인만큼 기후변화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9월 2일 [新농사직썰㊻]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