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신냉전’ 속 맞은 격변의 한중수교 30주년
입력 2022.08.24 08:08
수정 2022.08.24 07:15
수교30년 동안 한중관계 비약적 발전
외교,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
대중교역액, 미일 합친 규모보다 많아
사드·동북공정 등 갈등 반중정서 확산
한국과 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한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92년 8월 24일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지천(錢其琛) 외교부장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17호각에서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한중 양국은 서로에게 총을 겨눴던 적대적 관계를 극복하고 국교 정상화를 이뤘다. 한중수교는 탈냉전의 바람을 타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소련·중국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한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 정책과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사태 유혈진압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로 꺼져 가던 개혁·개방 불씨를 되살리고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돌파구를 모색하던 덩샤오핑(鄧小平)의 전략과 이해가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이에 힘입어 한중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지며 승승장구했다. 정치·외교 부문에선 정치·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돼 수사적으론 최고 수준의 단계에 진입했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1996년부터 수교국과의 친소(親疏)에 따라 관계 수준을 ‘수교’ ‘선린우호’ ‘동반자’ ‘전통적 우호협력’ ‘혈맹’ 등 다섯 단계로 분류한다. 이 가운데 동반자관계는 ‘협력동반자’ ‘건설적 협력동반자’ ‘전면적 협력동반자’ ‘전략적 동반자’ ‘전략적 협력동반자’ ‘전면 전략적 동반자’로 세분화된다.
경제 부문의 발전은 ‘폭발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중국에 1629억 1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하고 1386억 3000만 달러어치를 수입했다. 교역 규모가 3015억 3000만 달러로 1992년(교역액 63억 8000만 달러)과 견줘 47배가량 커졌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중 교역액은 교역규모 기준 두번째인 미국(1691억 2000만 달러)과 세번째 일본(847억 달러)의 교역액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한중관계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성취한 셈이다.
하지만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등 크고 작은 갈등요인으로 적지 않은 우여곡절도 겪었다. 이 같은 두 나라 갈등이 양국민 사이에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한국인의 대중 부정적 인식은 올해 처음으로 80%를 돌파했다. 2015년 한국인의 반중(反中) 여론은 37%에 불과했으나 2017년 61%, 2021년 77%로 상승해 급격히 악화됐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과 한국문화를 금지하는 한한령(限韓令)이 반중 정서의 기폭제가 된 듯하다. 고구려를 중국 지방정권이라고 역사를 왜곡한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이은 “김치와 한복 등이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억지 주장도 반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중국에서도 한국이 주변 20개국 가운데 중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 1위에 올랐을 정도로 반한(反韓)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2016년 중국에서 한류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인기몰이를 하며 남녀 주연배우 송혜교, 송중기가 ‘송송 커플 신드롬’을 일으켰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특히 수교 30년 만에 ‘신냉전’으로 불리는 국제질서의 대격변 속에서 한중관계는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은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고 동맹을 규합해 중국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대중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신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견제하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칩4(CHIP4) 반도체동맹을 통해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는데 대해 중국은 “지도자들 간의 약속위반”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미중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정부의 전략적 판단과 선택은 국가 명운과 직결되는 문제다. 미중 두 나라 모두 한국에겐 중요하다. 때문에 우리는 굳이 누구와 가깝다는 것을 알려 어느 한쪽에 불편함을 줄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는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가깝고 오랜 이웃인 중국과는 긴밀한 우호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인도·호주 등이 지원하는 ‘대중 포위망’에 갇힌 중국 입장에선 아마도 한국만큼 자국 입장을 전달하고 도와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줄 국가는 없을 것이다.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와 IPEF와 칩4 참여 등 다자협의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국제적 환경을 활용해 미국이나 중국에 할 말은 다 해야 한다. 국가 핵심이익이나 주권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확고한 원칙을 세우고 미중을 설득하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두길 보기가 아닌 국익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단호한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 외교도 결국 인공지능(AI)이 아니라 인간이 하는 까닭에 전략적 모호성만 유지하다간 기대감만 부풀려 더 큰 후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글/김규환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