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 한풀 꺾이나…전기차에 밀린 넥쏘
입력 2022.08.14 06:00
수정 2022.08.12 08:34
'규모의 경제' 한계로 가격경쟁력‧충전인프라 부족
배터리 고성능화로 전기차 대비 주행거리 강점도 희석
정권 교체로 '수소경제 육성'도 온도차…민간 주도 전환
현대자동차그룹을 중심으로 민관이 적극 협력해 육성했던 ‘수소경제’가 다소 시들해진 모습이다. 정권이 바뀌며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데다, 수소경제 대중화의 상징이었던 수소연료전지차(FCEV, 수소전기차) 보급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14일 환경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올해 120개 지방자치단체의 수소전기차 보급 목표는 총 1만대에 육박(9925대)했으나 현재까지 출고대수는 절반을 조금 넘긴 5276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승용 수소전기차로 범위를 한정하면 보급목표 9857대에 출고대수는 5259대였다.
현재 국내에서 승용 수소전기차는 현대자동차 넥쏘 한 종만 판매되고 있다. 넥쏘는 올해 7월까지 5458대가 판매되며 전년 동기 대비 11.3% 증가했지만 절대 판매량이 적다. 같은 기간 승용 전기차 출고대수가 5만6000여대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전기차 출고적체가 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 수요 격차는 더 커진다.
업계에서는 차량 보급과 충전 인프라 구축의 선순환이 필요한 친환경차 시장의 특성상 이같은 구조가 계속될 경우 수소차 대중화는 힘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소충전소가 충분히 구축돼야 선뜻 수소차 구매에 나설 수 있겠지만, 수소충전소 운영자 입장에서는 수소차가 충분히 보급돼 충전 수요가 많아야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 어느 한 쪽이라도 부족하다면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수소충전소가 위험 시설로 인식돼 충전소 구축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넥쏘 오너들은 몇 곳 안 되는 수소충전소까지 일부러 찾아가 길게 줄을 서는 상황이 불만이지만, 누적 판매가 3만대도 안 되는 상황에서 수소충전 인프라를 전국에 촘촘하게 구축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넥쏘 한 차종이 고군분투하는 상황도 시장 저변을 넓히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2018년 출시 당시만 해도 넥쏘는 각종 첨단 기능을 갖춘 차종이었지만 벌써 5년이 넘게 지났다. 현대차‧기아 주요 차종들의 통상적인 풀체인지(완전변경) 주기가 5~6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넥쏘도 구형 소리를 들을 만한 형편이다.
여기에 넥쏘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디자인이나 차체 크기, 용도 측면에서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승용 수소전기차를 생산, 판매하는 브랜드는 현대차와 일본 토요타 둘 밖에 없다.
현대차에 다양한 수소전기차를 내놓을 것을 종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비자들은 넥쏘 구매시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 3000여만원을 지급받아도 4000만원가량을 내야 하지만, 현대차는 그렇게 팔고도 대당 수천만원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소연료탱크와 스택 등 부품 가격이 워낙 비싼데다, 판매량이 많지 않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힘든 탓이다.
새로운 수소전기차를 개발하면 개발비 부담까지 추가된다. 내연기관차 개발에도 수천억원이 소요되는데, 수소전기차는 더 많이 든다. 많이 팔아 개발비를 뽑는다는 보장이 없다면 신차 개발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배터리 전기차(BEV) 진영의 경쟁력 강화도 수소전기차 저변 확대에 마이너스 요인이다. 넥쏘 출시 당시만 해도 한 번 충전에 600km 이상을 달린다는 게 큰 장점이었지만, 지금은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가 길어지며 수소전기차의 장점도 희석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가 보통 160km 내외였는데 5년 전에는 300km, 지금은 400km 이상까지 올라왔다”면서 “배터리 기술 개선에 따라 앞으로도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더 길어질 것이고, 승용 부문에서는 수소전기차와 큰 차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수소전기차의 부진은 정권 교체와 함께 ‘수소경제 육성 전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는 수소경제를 중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수소경제위원회를 두는 등 수소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보였으나, 윤석열 정부에서는 다소 온도차가 있다.
지금은 민간 주도의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으로 수소산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정부측 참석자는 총리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으로 격이 확 떨어졌다. 화제성도 과거에 비할 게 아니다.
다만 친환경 에너지로서의 수소산업의 가치는 여전한 데다, 주요 대기업들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지목하고 투자에 나선 만큼 지나치게 비관적인 시각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물론, SK그룹, 포스코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한화그룹 등 주요 대기업들이 수소사업 육성을 위한 전담 조직을 운영하며 대규모 투자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수소전기차는 애초에 승용보다는 높은 출력을 요하는 상용 부문에서 경쟁력이 높고, 운송 부문이 아니더라도 수소에너지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면서 “수소의 생산, 저장, 운송, 활용 등 전반을 아우르는 우리 기업들의 수소생태계 구축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