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반도체법 서명...삼성전자, '용병' 전락 우려
입력 2022.08.10 16:05
수정 2022.08.10 16:11
강력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 기조 속 눈에 띄는 인텔 행보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한 인텔, 향후 국내 기업에 위기 될 수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법에 서명하면서 미국 내 반도체 산업 투자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국내 기업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되면서도, 자칫 '용병' 역할에만 그치지 않도록 한국 정부도 국가 차원의 산업 육성에 빨리 나서야한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간밤 '반도체 산업육성법'에 서명하고 공포했다. 이미 지난달 의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미국 반도체 산업과 기술 우위 유지를 위해 2800억달러(한화 약 366조원)를 투자하는 것이 골자다. 국적과 관계없이 미국 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 공제를 적용한다. 법안이 정식 발효되면 미국의 인텔,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가 가장 큰 수혜 기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이를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에 호재라고 해석한다. 이번 미국 반도체법이 중국 견제 목적이 있는만큼 단기적으론 중국 투자 금지 등으로 인한 국내 기업의 부담이 커지지만 장기적으론 여러가지 세제 지원 등의 혜택을 입을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를 단기적으론 호재이나 장기적으론 위기로 보는 전망도 있다. 생산 및 수출보다는 기술 역량이 더 핵심인 반도체 산업 특성상 중국 견제에 따른 부담이 생각만큼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나아가 미국이 자국 내 생산 역량을 끌어올리는 시점까지, 국내 기업이 자칫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에 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정규직인 자국 군대와 구분된다는 차원에서 용병은 소위 계약직인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을 둘러보고 미국 투자에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등 우호적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연일 이어지는 그의 발언을 보면 숨은 진의가 내포돼있다. '아메리카 이즈 백(미국이 돌아왔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미국산)' 등을 언급하며 "미래 반도체 산업은 미국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기류는 간밤 반도체법 서명 직후 발언에서도 읽을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한국, 유럽은 반도체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의 역사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30년 전에는 미국에서 전체 반도체의 30%가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10%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기업이 입을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은 제한적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다. 현재 한국이 미국이 요구한 칩4 동맹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부분도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상존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세제 혜택 여부보다, 미국 기업의 역량 강화로 국내 기업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약 1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대만 TSMC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120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과 TSMC 모두 2024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인텔의 투자다. 인텔 역시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2024년 가동을 목표로 약 20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라인을 건설 중인데,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도 대규모 반도체 공장과 연구시설 등이 접목된 '메가팹(Mega fab)'을 짓기로 하며 대대적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오하이오주에만 최대 1000억달러의 투자가 예정됐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내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해지며 파운드리 투자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이에 팹리스(반도체 설계) 위주 사업을 이어가던 인텔 역시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한 것이다. 인텔은 현재 미국에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한 각종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목적 하에 적극적 투자 의지를 밝히고 있다.
나아가 인텔은 신규 고객사로 대만 팹리스 미디어텍을 확보한 상태다. 미디어텍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에서 글로벌 1위를 두고 퀼컴과 승부를 겨루고 있다. 그간 대부분의 생산을 TSMC에 맡겨왔는데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인텔을 택했다.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아직 1%대에 불과해 TSMC(53%), 삼성전자(16%)의 상대로는 역부족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막대한 투자와 그에 따르는 미국 정부 차원의 보조금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고객사 유치에 나선다면 5년 후 10년 후 상황은 충분히 뒤집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돈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이나 대만 등 외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반도체 공급망을 형성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기업으로서는 인텔이라는 주요 고객사를 잃는 것이며, 미래에는 기타 고객사를 상대로 하는 수주 물량마저 빼앗길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삼성전자 등의 국내 기업이 단기적인 세제 지원 등의 수혜를 활용하되 자체적인 기술 초격차 및 산업 주도권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정책 수립 및 이행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도 삼성전자는 TSMC에도 여러 인프라면에서 열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인세 임금, 인프라 등 여러면에서 불리한 입장이다. 또한 미국, EU, 독일, 일본 등이 두자릿수 조 단위의 투자를 하는 상황과 반대로 여전히 관련 산업 법안 육성이나 지역 시설 설립은 정체 돼있다.
이규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내기업들이 반도체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해외 선진업체 수준의 인프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법인세 인하,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 세액공제율 인상, 인력양성 등에 대한 지원 및 규제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