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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21>] 해장술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7.13 14:03
수정 2022.07.20 11:00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제21화 해장술


도반이 큰 소리로 그 먼 길을 어떻게 걸어 가냐며 안 된다고 다시 돌아오라고 하는 말에 나는 손만 한번 들어주었다. 그러자 도반은 다시 큰 소리로 잘 가라는 인사를 내질렀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손만 들어주고 짐짓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커브를 돌아서는 순간 내 걸음걸이는 패잔병처럼 처지고 말았다. 나는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을 만큼 최악의 컨디션으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비척비척 걸어갔다. 그렇게 나는 귀가했고, 이튿날 출근했고, 거의 한달 동안 근신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자 서서히 자신감이 올라온 나는 스스로 근신을 풀고 음주활동을 재개했다. 바로 어젯밤에는 동료형사들과의 술자리가 자정 전에 끝나버려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도반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리하여 도반과 함께 택시를 타고 선배의 선술집에 도착했을 때 선배 부부는 단골손님 용진과 앉아 있었다. 용진은 선술집 선배의 친구였는데 종종 생선회를 사가지고 가게에 들렀다. 오늘도 용진은 여름전어를 회로 떠와서는 함께 먹고 있었다.


“선배, 오늘은 내가 사야 하는데 돈이 없거든요. 외상 되죠?”


내가 언죽번죽하게 말하자 선술집 선배가 그럼, 하면서 기분 좋게 승낙했다. 우리는 용진의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선술집 선배가 소주 한 병과 생맥주 오백을 가져왔다.


“도반. 안주는 뭐 할까?”


“안주는 그냥 둬. 외상 한다면서. 내가 적당히 챙겨줄게.”


선술집 선배가 말했다. 선술집 선배는 마른안주와 번데기를 가져와 옆자리에 앉았다. 내가 소주 한잔을 따라주었다. 도반과 선술집 선배가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 내 시선은 용진에게 가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전어회에 가 있었다. 전어하면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전어를 최고로 치지만 그건 구이로 먹을 때 얘기고 세꼬시로 먹는 전어는 뼈가 여린 여름이 제철이라는 말을 최근에 들은 적 있었다. 그래서 여름전어에 관심을 가지던 참이었다.


“부회장님. 어디서 이런 귀한 음식을?”


나는 소주잔을 들고 용진과 선배 아내가 있는 자리로 옮겨갔다. 아니 전어회가 있는 자리에 가 앉았다.


“어찌 오늘은 내게 이렇게 살갑게 구시는가, 아우님. 전어 때문인가? 그렇다면 한 점 들게. 딱 한 점만.”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내가 용진을 부회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이름이 성씨 포함하여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주잔을 냉큼 비우고 전어 한 점을 입에 넣어서는 아주 천천히 오래도록 씹었다. 입안에 퍼지는 고소한 맛이 과연 천하 일미였다. 그리고 아마도 몇 점을 더 집어 먹었으리라.


여기까지가 어제 기억의 전부였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술값 계산은 어떻게 되었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호주머니에 단돈 천원만 남은 걸로 봐선 술값을 주고 온 것 같기도 한데 단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반에게 전화를 해봐야 진상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도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 못지않게 어제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나는 곧장 집으로 가서 막걸리 한 통에 낮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내버스는 이제 뒤벼리를 달리는 중이었다. 푸른 물결 넘실거리는 드넓은 남강을 끼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문화예술회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잠시나마 시선이 마사지되면서 시야가 훤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불현듯 휴대폰이 울었다. 아니 노래했다.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다. 아들 정우가 벨소리라며 다운 받아준 노래였다. 나는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도반이었다.


“어제 내가 계산은 했냐.”


“일만 오천 원 외상 달아놨어.”


“해장술 한잔 할래?”


“좋지.”


나는 도반의 모텔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도반이 훤한 이마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반갑게 손을 들어올렸다. 우리는 남북정상이 만나는 것처럼 장중하게 악수하고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해장국 한 그릇에 얼마지?”


“오천 원.”


“그럼 두 그릇 시키면 딱 오천 원밖에 안 남는데 소주 두 병이 안 되잖아.”


아침에 이만천원 들고 나와 택시비 오천 원, 버스비 천원을 지출한 터였다.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사모님. 해장국을 안주할 수 있게 양 좀 넉넉하게 한 그릇 해주실래요? 돈은 더 드릴게요.”


“그럼 칠천 원 계산하세요.”


비대한 몸집의 여주인이 화통하게 말하며 소주 한 병을 들고 왔다.


“막걸리 없어요?”


“예.”


여주인이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듯 뚝 잘라버리고 주방에 들어갔다.


“아침에 내 호주머니에 딱 천원이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계산한 줄 알았는데?”


“어제 자네 주머니 뒤져보니까 일만 사천 원 있어서 택시 태워 보냈지.”


“그럼 내가 택시비 사천 원을 준다 한 게 만 원짜리 한 장에 천 원짜리 석장을 준 모양이군.”


“그건 기억나는가? 용진 형에게 가서 전어 먹었던 거.”


“기억나지. 한 점이나 먹었나?”


“한 점이 아니라 제법 먹었어. 말도 많았고. 근데 지켜보고 있으니까 자네 혀가 꼬이더라고. 실수할까 싶어 얼른 택시 태워 보냈지.”


여주인이 해장국을 끓여왔다. 이미 소주 한 병이 동나고 두 병째 개봉한 직후였다. 소주 두 병을 다 마셨는데도 안주는 꽤 많이 남았다. 정산해 보니 나머지 돈이 달랑 이천 원이었다.


“사모님. 막걸리 없어요? 소주는 취해서 못 마시겠는데.”


“취하면 그만 마셔요.”


“에이, 사장님. 옆집에서 막걸리 한통 사다주세요.”


도반이 거들고 나섰다. 그러자 여주인이 단골손님 도반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던지 고무장갑을 벗고 마지못해 주방을 나왔다. 내가 막걸리는 얼마냐고 묻자 여주인이 삼천 원이라고 대답했다. 다른 데는 이천 원 받던데 그냥 이천 원만 받으면 안 되냐고, 내 전 재산이 이천 원밖에 없다고 사정했지만 여주인은 이천 원으론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어떡할까요? 사 올까요, 말까요?’ 하며 신속한 판단을 요구했다. 그러자 도반이 여주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사다 주세요’ 하더니 주머니에서 천원을 꺼내어 내게 건네주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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