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알리겠다” 협박 범죄 기승…법조계 “사회적 낙인 자체를 없애야”
입력 2022.06.29 10:09
수정 2022.06.29 10:12
가해 남성, 이별에 앙심 품고 범행…SNS·인터넷 등에 폭로
헌재 ‘임신 중절’ 조항 불합치 결정 이후로도 반복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을 협박하는 범죄가 이어지자 임신중절에 대한 사회적 낙인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관련 판결문 중 헌법재판소(헌재)의 불합치 결정 이후로도 “낙태 사실을 알리겠다”며 여성들을 협박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이를 빌미로 돈을 뜯어내거나 성폭행하는 등 추가 범죄로 이어진 사례도 존재했다.
헌재는 2019년 4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자기낙태죄’와 의사가 임부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동의낙태죄’를 처벌하는 조항에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다.
A씨는 2019년 8월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자신과 사이에서 임신한 아이를 낙태한 사실을 그녀의 부모와 직장에 알리겠다고 위협했다. 이후 그는 협박에 못 이겨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피해자를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A씨의 죄질이 불량하다면서도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고려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B씨는 남동생의 아내인 피해자가 과거 두 차례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던 점을 약점으로 삼고, 이를 자신의 부모에게 말 할 것처럼 협박해 750만원 상당의 금품을 뜯어낸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남동생 부부가 연락을 피하자 피해자의 부모에게도 같은 취지로 협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B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해 여성과 교제했던 남성들이 이별에 앙심을 품고 범행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폭로의 상대방은 피해 여성의 부모와 직장, 지인들 등이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폭로 내용을 올리거나 전단을 만들어 뿌리겠다는 사례도 존재했다.
C씨는 2020년 7월 여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자 “네가 다니는 교회와 너의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에 낙태 사실을 모두 유포하겠다”며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별도 혐의까지 더해져 징역 4년형을 받았다.
D씨는 전 여자친구가 자신의 연락을 피하자 낙태 사실을 지인들에게 알리겠다는 등 7개월간 지속해서 협박했다. 그는 법원의 접근금지 가처분 결정을 어기고 집까지 찾아갔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지난해 10월 D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일각에선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여전해 이 같은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형법 전문 한 변호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엔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이 많았는데, 낙태죄 폐지 이후 줄어드는 추세”라면서도 “사회적 낙인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명예훼손·협박 범행은 계속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