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원리 반하는 유류세 인하 ‘딜레마’ [장정욱의 바로보기]
입력 2022.06.21 07:00
수정 2022.06.20 16:00
최대 폭 낮춰도 효과 기대 힘들어
수요·공급 중심 가격 형성 방해
대책 안 남은 정부 ‘시장’ 살펴야
정부가 다음달부터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유류세 인하 폭을 기존 30%에서 37%로 늘리기로 했다. 세금 인하로는 최대 폭이다.
이번 정부 결정은 불가피한 선택에 가깝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공급난 등으로 국제유가가 끝없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 정부가 직접 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쓴 셈이다.
정부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류세 인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 듯하다. 인하한 세금보다 더 많이 오르는 국제유가 탓이다. 최악의 경우 기름값 관련 국민 부담은 그대로인데 세금 인하로 국가 재정만 나빠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생각해봐야 할 경제 원리가 있다. 바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시장 수요량과 공급량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한다. 사려는 사람이 많아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올라가고 반대로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이 내려가는 원리다.
‘국부론’ 저자이자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말한 가격 결정의 ‘보이지 않는 손’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게 바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확대하자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반하는 정책이라며 우려한다. 기름값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야 공급자들이 가격을 낮추는데 유류세 인하 때문에 기름 사용이 줄지 않고, 결국 가격 또한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만 재화 가격이란 게 꼭 수요와 공급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특히 현재 치솟는 기름값은 국제 상황에 따른 것으로 아무리 수요를 줄여도 가격 상승을 막기 힘든 게 사실이다.
기름 사용량이 줄었다는 점에서도 유류세 인하가 수요와 공급 법칙을 방해하고 있다는 일부 전문가 주장은 적확하지 않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 사이트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휘발유·경유 합계 소비량은 1736만 배럴로 3월보다 6%가량 줄었다. 지난해 같은 달(2125만 배럴)과 비교하면 18% 넘게 감소했다.
경제전문가들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정부 유류세 추가 인하에 아쉬움을 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효과에 대한 불신이다.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는 리터(ℓ)당 820원이다. 정부가 그동안 유류세를 30% 낮추면서 247원이 줄어 ℓ당 573원까지 떨어졌다. 내달부터 7%p를 추가로 낮추면 57원이 더 줄어든다.
그런데 유류세를 30% 낮췄음에도 판매가격은 역대 최고치를 연일 기록해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 다시 57원을 추가로 낮춰준다고 해서 유의미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유류세 인하라는 카드가 당연하듯 쓰여왔다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유류세 인하는 언제부터인가 유가가 급등할 때 가장 흔히 쓰는 대책 중 하나가 됐다. 특히 2018년 11월 이후 지금까지 유류세를 낮춘 기간과 아닌 기간이 비슷할 정도로 남발했다. 2018년 11월 이후 지금까지 3년 8개월(44개월) 가운데 유류세를 인하하지 않은 기간은 26개월에 그친다.
일각에서는 당연하듯 쓰는 유류세 인하 카드가 공급자(정유업계) 측에서 가격을 인상하는 요인으로 악용한다고 말한다. 유가 상승 시기 정유업계가 유류세 인하분까지 고려해 가격을 더 높인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음모론’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현재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 정책은 분명 한계가 있다. 세금을 낮추는 정책이 소비 절감에 도움을 주지 못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맞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유류세 감면 제도가 가지는 한계이자 ‘딜레마’다.
정부는 이번 유류세 추가 감면으로 사실상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썼다. 안타깝지만 국제유가는 앞으로도 당분간, 아니 제법 오랜 시간 지속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불가피하게 유류세 카드에 의지했다면 앞으로는 어쩔 수 없이 수요와 공급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