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불황에 장비업체 각자도생..."산업 뺏길라" 위기감도
입력 2022.06.14 15:09
수정 2022.06.14 15:10
국내 제조사 설비 투자 축소에...배터리·반도체로 눈 돌리는 업체들
업계 "디스플레이 투자 공백기 동안 중국이 물량 공세로 판세 뒤집을 가능성도"
디스플레이 산업 불황으로 인한 시장 수요 감소에 따라 장비업체들의 사업 다각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디스플레이 비중을 줄이고 배터리·반도체로 눈을 돌려 기업 활로를 찾겠다는 방침인데 이른바 각자도생이다. 다만 이런 추세가 오래 지속된다면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 전체가 퇴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장비업체들의 매출에서 디스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급감하고 있다. 패널 판가 하락 등으로 삼성·LG디스플레이 등 제조사들이 관련 투자를 축소하면서다. 이에 기존 디스플레이 장비를 공급하던 장비업체들이 제조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독자적인 방법을 찾은 것이 사업다각화다.
대표적으로 국내 메이저 디스플레이 제조사들에 장비를 납품하던 장비업체 SFA의 경우 2016년 1조2288억원이던 디스플레이 수주액이 2021년 2338억으로 6분의 1 가까이 내려앉았다. 현재 전체 수주액에서 디스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도 되지 않는다.
반대로 디스플레이 장비를 제외한 사업영역의 비중은 점차 늘리고 있다. SFA는 2차전지 장비, 반도체 장비, 각종 스마트 물류 장비를 사업군에 추가했다. 주성엔지니어링 역시 반도체와 태양광 장비를 사업군에 추가하며 포트폴리오 변화를 꾀하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액 4766억 원 가운데 디스플레이 장비 예상 매출액은 684억원에 그친 반면 반도체 등의 기타 장비 예상 매출액은 4079억원을 차지한다.
원익IPS도 디스플레이 장비와 반도체 장비를 함께 공급하는 업체다. 올해 예상 매출액 1조 3338억원 가운데 디스플레이 장비 예상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793억원에 그쳤다. 그에 반해 반도체 장비 예상 매출액은 전체 비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조 545억원이다.
SFA, 주성엔지니어링, 원익IPS 등과 같이 배터리나 반도체로 방향을 전환한 기업은 활로를 찾았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 업체들의 경우 디스플레이 제조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제조사 실적에 따라 장비업체들의 실적도 좌우된다. 그렇지 않다면 중화권 디스플레이 고객사 위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시장은 2024년까지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설비 투자 재개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 서플라이체인 컨설턴츠(DSCC)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LCD와 OLED 장비 투자 규모는 올해보다 약 60% 가량이 감소한 53억 달러(약 6조7000억원)으로 예측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중에서도 LCD 장비 투자는 20억 달러(약 2조5000억원)로 전년 대비 약 80% 가까이 축소될 전망이다. 실제로 삼성디스플레이는 14일 LCD 사업부 인력 300여명을 삼성반도체로 전환배치했다. 국내 주요 장비업체들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 사업다각화가 필수인 상황이다. 장비업체 한 관계자는 "디스플레이 입지는 점점 좁아지는데 계속 거기에만 올인하면 기업 매출이 나올 수 없다"며 "우리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제조사 의존도를 낮춰야한다"고 설명했다.
제조사에 이어 이처럼 장비업체들도 탈(脫)디스플레이 러시를 이어가면서 업계엔 위기감이 팽배하다. 업계 관계자는 "OLED가 아직은 중국이 기술에서 조금 뒤지는 상황인 것은 맞지만 이전 LCD와 마찬가지로 압도적 물량으로 비용 경쟁에서 우위를 한번 점해버리면 상황은 완전 뒤바뀔 수도 있다"며 "삼성 및 LG디스플레이의 설비 투자가 가능하도록 정부가 빨리 뒷받침해줘야 중소 장비 업체들의 매출 반등도 일어나고 우리 산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1월 통과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에는 디스플레이가 빠진 상태다. 반도체·배터리와 함께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되는 디스플레이임에도 여전히 홀대론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지원이 미미한 상황에서 국내 디스플레이 양대 산맥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당분간 자체적으로 대학과 협력을 맺어 인재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